또한 폭풍이 오기 전에 그것을 예고하는 깊은 정적이 폭풍 자체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이 정적은 사실 폭풍을 싸고 있는 포장지일 뿐이고, 겉으로는 아무런 해도 없어 보이는 라이플총 속에 치명적인 화약과 탄알과 폭발력이 들어 있듯이 그 정적 속에는 폭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살줄이 실제로 풀려나가기 전, 노잡이 주위를 조용히 굽이치고 있을 때의 그 우아한 평안, 이것이야말로 다른 양상의 어떤 위험물보다도 더 진정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작살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어도 작살이 아니라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 P403
다만 대부분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샴쌍둥이처럼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당신의 돈을 관리해주는 은행이 파산하면 당신은 권총으로 자살한다. 당신의 약제사가 실수로 당신 알약에 독약을 넣으면 당신은 죽는다. 물론 극도로 조심하면 인생에서 이런 숱한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퀴퀘그와 연결된 원숭이 밧줄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지만, 때로는 퀴퀘그가 밧줄을 홱 잡아당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미끄러져 바다에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밧줄의 한쪽 끝뿐이라는 사실이다. - P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