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관들에게
연마노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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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고, 스러지고, 잊히는 것들에 관한
연마노 작가의 여덟 가지 이야기

🤖 떠나가는 관들에게

🤖연마노 작가
🔸1992년생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만화창작과 애니메이션 전공
🔸현재 직장인 겸 상업 웹소설 작가로 활동 중

🤖 한줄서평
🔸단편으로 엮인 8가지 이야기들. 기후 위기의 변화들 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관심소재와 함께 SF로 담아내어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
p13
그는 특별히 어떤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들고 있던 팸플릿 중 하나를 서진에게로 내밀었다. 팸플릿에는 각종 의료기기를 주렁주렁 달고서 눈을 감고 누운 남자의 손을 잡은 단발 노인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문구가 보였다.
자식에게 기회를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p25
가끔은 잊히지 않는 어떤 기억들이 있었다. 그날 그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잇었는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어떤 날들.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그렇게나 많은 아이가 저기서 죽었고 또는 죽어 가는데 나는 여기서 편안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문득 영문 모를 죄책감을 느끼던 시간.

p70
나는 나 자신의 우울만으로도 너무 버거워서 너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너와 싸운 뒤 차가운 방에 누워 무기력하게 우는 동안 너는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못한다고만 생각했지.
솔직히 이건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긴 해. 하지만 누가 상대를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겠어? 그저 노력할 뿐이지. 나는 그 노력마저 관두었던 거야.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자살은 내 몫인 줄로만 알았지 네 몫인 줄은 생각을 못 했어.

p83
모두의 목적은 같았다. 프로젝트의 완주.
방주와 관련된 수많은 분야 중 우리 연구동이 맡은 건 DNA 수집 및 보존 분야였다. 수집한 유전자 샘플들을 정리하고 복원하여 방주에 태울 유전자 카탈로그와 데이터 지도를 제작하는.

p99
인간은 그들을 멸종시키고 동족마저 멸절시키고 있었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우리에게 우리를 보존하고 우리의 존재를 사라지지 않게 할 권리가 있을까? 낯선 땅에서 그곳의 생태계에 편입해 새롭게 시작할 권리는?

p123
왜냐햐면...이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딱히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들을 우주 저편에서라도 살려내고 싶은 절실함이 있었다기보다, 당장 그것들이 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명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 누군가가 살리고자 기를 쓰고 애쓴 것들이 거기서 그런 식으로 죽게 내버려 두기는 좀 그랬기 때문이었다. 이미 시작된 나의 관성을 되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임감이나 사명감은 좀 거창한 말이었다.

p142
순례자란 고향을 떠나 길을 나서는 이들이다. 나는 그저 연어처럼 돌아왔을 뿐이다. 소금에 삭는 꿈을 그만 꾸고 싶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이대로 보내고 싶진 않았기에 돌아왔다.

p155
내 잘못이야. 양심이 그렇게 속삭였지만, 때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일을 크게 망쳤는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고, 덮어놓고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도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진안은 여기 온 직후부터 나와 함께 있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와 대화해주고 내가 미움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도와준 사람.

p207
그러다 일전에 모두를 찾아 은아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면 멋진 일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어쩌면 그렇게만 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다시 모인다면 그게 고향이건 지구건 아무런 상관도 없을 터였다. 함께하는 것 자체가 집이었으니까.

p261
저는 연구를 계속할 거고, 이해하려 노력할 겁니다. 이해할 수 있는지 노력할 거고요.
저는 신을 찾으려는 게 아니에요. 이해를 찾는 거예요.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네요. 저에 대해 어떻게 적어서 보고하시건 좋아요. 쓰실 게 많이는 없으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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