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우거진 숲길이 끊기면서 순식간에 시야가 탁 트였다. 동시에 왼편에 커다란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호수 너머 반대편까지 가려면 한참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넓은 호수였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넓고 고요한 수면 위에 찬란하게 부서졌다. 어딘가에서 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더 크게 듣고 싶어 버튼을 눌러 창문을 내렸는데, 그러면서 조금 놀랐다. 주행 중에 핸들에서 한 손을 떼고 무언가를 조작한 것은 처음이었다.
액셀을 밟은 발에도 살짝 더 힘을 줬다. 하늘과 구름, 연둣빛 잎사귀들을 머금은 호수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나는 운전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신기한 일이었다. 심지어 전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드라이브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운전이 하고 싶어 핸들을 잡는 사람들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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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자체가 이 진기하고 이례적인 환경에서 가장 희귀한 자원일 수도 있다. 항상 구할 수 있는 것에는 가치가 없다. 오늘날 전 세계 중산층과 상류층이 직면한 큰 문제는 부족이 아니라 풍요다. 자세히 살피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결국 누군가 발견하게 된다. 우린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결핍은 존재의 기본 조건이다. 얼어 죽기 직전인 사람에게는 몸 안에 단 하나의 소원을 품을 공간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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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산골 할머니의 일기, 그 소박함과 다정함 :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특별판
이옥남 지음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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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복


추석 명절 다 지내가고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제 가고

딸은 오늘 가고 손자는 와서 엄마 가는 것 배웅하고

겨우 점심 해 먹고는 금방 간다.

손자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꼬 난다.

왜 그리도 섭섭한지.

이제는 자꼬 외로운 생각이 들면서 슬프다.

밖에 나가봐도 시원한 마음은 하나도 없고 먼 산을 바라봐도

괜히 눈물만 날 뿐이지 즐거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 비감한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하리.

자식들 있어도 다 즈의 생활에 맞추어서 다 가고

나 혼자 남으니 앉아봐도 시원찮고 누워봐도 늘 그식이고

이웃도 적막강산이고.

비는 왜 그리 오는지 앞마당에는 큰 봇도랑 만치

물이 내려가고 뒤란에도 보일러실에도 전부 물 개락이고

밭에도 전부 샘이 터져서 발 딛고 들어서면 진흙에

풍덩 빠져서 어띃게 나올 수가 없네.

물 복은 왜 그리 많이 탔는지 여느 복도 좀 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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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획자의 독서 - 오늘도 책에서 세상과 사람을 읽는 네이버 브랜드 기획자의 이야기
김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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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이 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파리에서 마주한 경험들은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이들에게 책이란 숨 쉬거나 걷거나 먹는 행위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자,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걸 매 순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또한 적어도 제가 만난 대다수의 사람이 책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파리에 도착하기 전 가진 환상과 실제 비슷한 곳도 있었고 전혀 다른 곳도 있었지만, 그 모든 곳에 책이 있다는 사실이 저를 새로운 판타지로 이끈 것이죠.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파리를 책의 도시로 기억하게 해준 프랑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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