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그러자 실제로 항상 두통에 시달렸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작문 시간에 나른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다 문득 고개 돌리던 소리 모습도. 그때만 해도 소리와 이렇게 이어질 줄 몰랐는데……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오늘 지우는 엄마를 잃고, 용식을 떠나보내고, 선호 아저씨와 생전 처음 와본 동네의 어두운 고속도로를 함께 달리고 있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문득 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네가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뿅뿅 소리 나는 샌들을 신고 아장아장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그럴 때면 나는 뿌듯한 감정이 들면서도 왠지 네가 그대로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지. 부모들은 한 번쯤 다 겪는 감정이고.
그런데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채운아. 나도 그럴게. 그게 지금 내 간절한 소망이야. 이건 희생이 아니란다, 채운아. 한 번은 네가, 또 한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준 것뿐이야. 그 사실을 잊지 말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