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되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바꾼 건 회식 문화였다.
우선, 회식을 한달에 한번 이상 잡지 않았다. 금요일은 가급적 피했다. 회식이 있는 날은 일괄 다섯시 오십분에 업무를 마치도록 했고 식사와 술자리를 모두 포함해 아홉시에 정확하게 끝냈다. 술을 강권하지 않았다. 마시고 싶은 사람만 마실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이상 천의 얼굴에는 가지 않았다.
우리 팀은 이제 입소문 난 와인바를 미리 예약해 포트와인을 마셨고 미슐랭 원스타에 올랐다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번화가의 영화관을 대관해 그 시기에 가장 유행하는 영화를 보는 것으로 회식을 갈음하기도 했다. 꼭 저녁 회식만 고집하지도 않았다. 날씨 좋은 봄날엔 다 함께 점심을 먹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벚꽃길을 걷거나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가보기 힘들다는 인기 있는 전시회를 평일에 여유롭게 관람했다. 주변 몇몇 팀장들이 그런 식으로 회식을 하면 단합이 줄어든다고 우려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때로는 야광 볼링장에서 파트별로 나뉘어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번쩍이는 야광 조명 아래서 각자가 고른 맥주를 마시며 파트끼리 경쟁하고, 응원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스트라이크가 나오거나 스코어가 뒤바뀜에 따라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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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우거진 숲길이 끊기면서 순식간에 시야가 탁 트였다. 동시에 왼편에 커다란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호수 너머 반대편까지 가려면 한참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넓은 호수였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넓고 고요한 수면 위에 찬란하게 부서졌다. 어딘가에서 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더 크게 듣고 싶어 버튼을 눌러 창문을 내렸는데, 그러면서 조금 놀랐다. 주행 중에 핸들에서 한 손을 떼고 무언가를 조작한 것은 처음이었다.
액셀을 밟은 발에도 살짝 더 힘을 줬다. 하늘과 구름, 연둣빛 잎사귀들을 머금은 호수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나는 운전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신기한 일이었다. 심지어 전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드라이브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운전이 하고 싶어 핸들을 잡는 사람들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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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자체가 이 진기하고 이례적인 환경에서 가장 희귀한 자원일 수도 있다. 항상 구할 수 있는 것에는 가치가 없다. 오늘날 전 세계 중산층과 상류층이 직면한 큰 문제는 부족이 아니라 풍요다. 자세히 살피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결국 누군가 발견하게 된다. 우린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결핍은 존재의 기본 조건이다. 얼어 죽기 직전인 사람에게는 몸 안에 단 하나의 소원을 품을 공간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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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산골 할머니의 일기, 그 소박함과 다정함 :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특별판
이옥남 지음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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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복


추석 명절 다 지내가고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제 가고

딸은 오늘 가고 손자는 와서 엄마 가는 것 배웅하고

겨우 점심 해 먹고는 금방 간다.

손자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꼬 난다.

왜 그리도 섭섭한지.

이제는 자꼬 외로운 생각이 들면서 슬프다.

밖에 나가봐도 시원한 마음은 하나도 없고 먼 산을 바라봐도

괜히 눈물만 날 뿐이지 즐거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 비감한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하리.

자식들 있어도 다 즈의 생활에 맞추어서 다 가고

나 혼자 남으니 앉아봐도 시원찮고 누워봐도 늘 그식이고

이웃도 적막강산이고.

비는 왜 그리 오는지 앞마당에는 큰 봇도랑 만치

물이 내려가고 뒤란에도 보일러실에도 전부 물 개락이고

밭에도 전부 샘이 터져서 발 딛고 들어서면 진흙에

풍덩 빠져서 어띃게 나올 수가 없네.

물 복은 왜 그리 많이 탔는지 여느 복도 좀 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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