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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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만 거기에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지우는 그 과정에서 겪을 실망과 모욕을 포함해 이 모든 걸 어딘가 남겨둬야겠다 생각했다. 그런 뒤 저쪽 세계에서 혼자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엄마와 용식에게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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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그러자 실제로 항상 두통에 시달렸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작문 시간에 나른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다 문득 고개 돌리던 소리 모습도. 그때만 해도 소리와 이렇게 이어질 줄 몰랐는데……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오늘 지우는 엄마를 잃고, 용식을 떠나보내고, 선호 아저씨와 생전 처음 와본 동네의 어두운 고속도로를 함께 달리고 있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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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그러자 실제로 항상 두통에 시달렸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작문 시간에 나른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다 문득 고개 돌리던 소리 모습도. 그때만 해도 소리와 이렇게 이어질 줄 몰랐는데……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오늘 지우는 엄마를 잃고, 용식을 떠나보내고, 선호 아저씨와 생전 처음 와본 동네의 어두운 고속도로를 함께 달리고 있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문득 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네가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뿅뿅 소리 나는 샌들을 신고 아장아장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그럴 때면 나는 뿌듯한 감정이 들면서도 왠지 네가 그대로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지. 부모들은 한 번쯤 다 겪는 감정이고.
그런데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채운아. 나도 그럴게. 그게 지금 내 간절한 소망이야. 이건 희생이 아니란다, 채운아. 한 번은 네가, 또 한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준 것뿐이야. 그 사실을 잊지 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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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네가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뿅뿅 소리 나는 샌들을 신고 아장아장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그럴 때면 나는 뿌듯한 감정이 들면서도 왠지 네가 그대로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지. 부모들은 한 번쯤 다 겪는 감정이고.
그런데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채운아. 나도 그럴게. 그게 지금 내 간절한 소망이야. 이건 희생이 아니란다, 채운아. 한 번은 네가, 또 한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준 것뿐이야. 그 사실을 잊지 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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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은 명대사들
정덕현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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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지금 현재에 대한 집중이 아닐까 싶다. 과거와 현재가 어떤 선 같은 것으로 이어져 그것이 미래로도 나아간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관념이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과거와 상관없이 현재로부터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갑자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가는 일이 가능한데, 다만 타인들은 그 변화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려 할 뿐이다. ‘분명 직장 상사와 큰 트러블이 있었을 거야.’
그러니 때론 묻지 말자. 괜스레 물어서 상처를 내는 일이라면 더더욱 피하자. 다만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현재의 그에게 집중하자. 이건 타인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내가 과거에 어떤 일들을 해왔고 어떻게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인과에 맞춰 어떤 삶을 살 것이고 살아갈 것이라고 예단하지 말자. 그건 인생을 너무나 재미없게 만드는 것이고, 또한 우리 모두가 앞으로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들을 스스로 잘라내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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