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먹고 마시면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기계가 작동했던 몇 달 전에 새뮤얼이 보려고 틀었다가 계속 볼 기분이 나지 않아 금세 껐던 다큐멘터리였다. 혼자서 다큐멘터리 영상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이 오길 기다리는 게 훨씬 쉬웠다. 하지만 이제 그의 옆에는 공감과 관심을 소리 내 드러내줄 남자가 있다. 새뮤얼은 어느새 파도 아래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새뮤얼은 섬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곳인지 오랜 세월에 걸쳐 배웠다. 섬은 어르고 야단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통렬히 체감한 시간이었다. 초목은 불친절했다. 같은 채소를 심어도 섬의 어떤 곳에서는 억세고 다른 곳에서는 재처럼 버석거렸다. 식물은 제멋대로 퍼지며 땅을 장악했지만, 모래와 바위로만 이루어진 황량한 땅이 길게 뻗어 있었다. 해안도 박정하긴 마찬가지였다. 반들거리는 큰 바위들에는 미역과 지의류, 새똥과 다닥다닥 붙은 조개류만이 제멋대로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 주변에서 다시마 줄기들이 썩어가다 갈색 시체가 되어 아침마다 찾아와 꾸물대는 안개 속에서 파도에 허우적댔다.
처음 섬에 들어왔을 때 가장 무서웠던 건 마구 구르고 뒤채고 휘도는 파도였다. 고립보다도, 길들지 않는 땅보다도, 다른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그럼에도 새뮤얼은 싫은 내색 없이 파도를, 그리고 섬을 둘러싼 거대한 바다를 경외하려 애썼다. 그가 계속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돌담을 쌓은 건 아마도 물살의 공격에서 땅과 자신을 지켜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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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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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목에 이끌려서 이 소설을 클릭했다
내 곁에 있는 심한 주정뱅이를 생각하며

소설의 제목 처럼 안녕 주정뱅이가 되던
주정뱅이 안녕이 되던 안녕하기를 바라면서~~
술의 내용을 읽는 내내 불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정뱅이를 조금은 이해하는 분분이 생겼다
술이 술을 먹지 않는 주정뱅이는 귀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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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는 너랑 노는 게 제일 좋아 - 아끼고 고맙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하태완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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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언젠가 헤어져야만 해요. 서로 미워 얼굴 붉히며 등 돌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헤어짐은 맺은 인연 앞에 필연이 아닐 수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당연한 이별을 투명 너머를 보듯 분명히 알고 있어요.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과 반려하는 동물들까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 존재와의 이별은 상상만으로도 고될 만큼 힘겹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우리 마지막 도착지가 있다는 사실을 말끔히 잊고 살아요. 지금이 전부인 것처럼 사랑해요.
사랑은 매 순간이 시작과 끝이므로 그때마다 열과 성을 다해야만 해요. 당신을 울릴 이별에 지레 겁먹어 움츠리지 말아요. 가진 친절과 다정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당장에 건네기로 해요. 베풀 수 있는 것을 괜히 숨기지 말고, 벅차오른 고마움은 지금 전해요. 소중한 인연과의 시간은 고작 끝에 닿기 위한 여정이 아니잖아요. 정해진 결말에 굴하지 말고 우리만의 아늑한 이야기를 꾸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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