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행로를 걸어왔든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것만큼은 모두가 같다. 다만 그 종착역에 닿는 모습은 또 각기 다르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종착역에 당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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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그조차도 책상 정리를 하듯이, 집을 치우듯이 평소에 정리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흔적들을, 나의 관계들을, 나의 많은 것들을 오늘 집을 나서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여기고 지금의 내 흔적이 내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덜 어지르게 되고, 더 치우게 된다. 좋은 관계는 잘 가꾸게 되고 그렇지 못한 관계는 조금 더 정리하기가 쉬워진다. 홀가분하게, 덜 혼란스럽게 자주 돌아보고 자주 정리하게 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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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누군가 한 손을 내밀어 주면 두 손을 내밀고, 껴안아 주면 스스스 녹아 버리는 눈사람이다. 내 첫사랑은 열한 살 때 만난 부반장이다. 치아에 금속 교정기를 장착하고 이마엔 좁쌀 여드름이 퍼진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아이였는데 그때 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표정은 지나치게 차갑고 툭눈붕어를 닮은 돌출된 눈동자에 나를 향한 모멸의 불꽃이 이글거렸는데 그땐 그런 것조차 사랑스럽게 보였다. 왜냐고? 나에게 잘해 줬기 때문에. 부반장은 땅콩이 박힌 초코바와 열두 마리 종이 거북이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줬다. 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 들고 복잡한 감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부반장은 화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뒷모습을 보이며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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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그늘


조용한 책이 놓여 있고 나는 택시를 타고 멀리 간다 문을 닫았고 다시 열렸다 당신은 아직도 깜깜하다 그 컵처럼 떨어뜨린 소리 이렇게 어둔 구석이 있을 줄 생각하지 못했다 몇 단어들을 새긴다 다시 조용한 책의 표지

나는 택시에서 내려 문을 닫고 오늘 닫은 몇 번째 문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문 뒤에는 또 문이 있고 문 뒤의 당신은 아직도 깜깜하다

더 오래 그럴 것이다 날카로운 소리에 손끝을 찔리고 어둠은 어디에나 있다 단어를 깔고 앉은 그늘 그것은 무척 조용한 책의 맨 뒤 나는 하얀 종이를 생각하고 사랑한다 떠밀려 올 수 없도록 그제야 이만큼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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