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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공화국으로 ㅣ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마르크스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기 위해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했다. 마르크스가 천재적일 때는 그에게서 독일적인 사유가 나타나지 않을 때이다. 독일적 사유를 관념론적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독일적 사유의 문제는 충분히 관념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적 사유의 전형은 현실을 곱디곱게 다듬어 이념형을 도출해내는 것인데, 사실 이 이념형이야말로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사유가 현실을 꿰뚫지 못하고 현실을 자기 안에 품는 것, 이것이 독일적 사유의 문제이며 헤겔, 칸트, 베버 등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르크스는 이 사유 습관을 종종 돌파해내지만, 금새 다시 돌아오고 만다. 그 역시 너무나 독일적인 것이다. 이 책은 경제학 책이 아니다 - 자본론이 그렇듯이. 그러나 엄청난 분량의 경제학'틱'한 외관으로 채워져있어 결국 독자들을 현혹시키는데 성공하고 만다. 그 와중에 아주 간간히 보여주는, 경제라는 안개 속의 사회라는 진실들은 아마도 그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진실이었겠지만, 이것들이 파편적 상태로 머물지 않고 하나의 일관된 체계를 이뤄야 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실패했으며 이제 우리는 그에게서 배울 점만 배우고 그를 보내줘야 한다.
거대한 전환
기대가 높아서인진 몰라도 가장 실망스러운 책. 폴라니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인류학자라는 평가에 십분 공감했다. 과거를 공부하는 것은 현재를 알기 위함인데, '그 때의 진실은 이랬다!' 이상의 무엇이 있는지 모호하기만 하다. 대충 보다 지루해서 덮었는데 너무 단정짓는 걸지도...
세계 공화국으로
먼저 한계부터 밝히면, 저자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칸트를 활용하는게 아니라 칸트의 문제의식에서 그대로 머무른다는 것이며,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300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있고 또 그 사이에는 니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일본 정신의 특징을 나는 두 가지로 본다 - 현실 적응을 위한 자기변용, 아름다움의 추구. 이 두 가지는 맞물린다. 현실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에 진리와 선을 포기하며, 아름다움의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 현실을 받아들인다. 현실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인간적 반응들을 고찰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칸트의 사유는 일본 정신의 입맛에 너무도 잘 들어맞으며, 이러한 진행 방식에 있어서 그는 실로 완벽하기 때문에 고진이 이를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고 칸트의 정신이 결코 일본적이지는 않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철학자다. 이에 반해 고진은 어떤가. 고진이 이 책에서 밝히는 자신의 목표는 칸트가 말한 '영구 평화'이다. 왜 그는 영구 평화를 원하는가. 평화가 실현되는 방식은 현존하는 다양한 힘들이 투쟁 속에서 서로간에 균형을 이룸으로써 달성되는 것이지, 각 힘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포기하고 평화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즉, 평화는 투쟁의 결과일 뿐이며, 힘들은 이를 자신의 욕망과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진이라는 이름의 힘의 진정한 목표는 결코 평화일 수가 없다. 평화라는 표상을 통해 그가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을 발견해야 한다. 평화라는 현상 그 이면에는 서로간에 적대적인 힘들이 존재하고, 또 그 힘 이면에는 권력의지가 있다는 것, 그래서 모든 평화는 투쟁을 위한 일시적인 준비기간이라는 것을 과연 고진이 모를까. 절대 아니다. 그는 이를 일부러 외면하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평화란 미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영구히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그는 힘과 권력의지를 무대에서 제외시킨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의지의 결여 때문에, 칸트와 다르게 그는 철학자가 아니며 심지어는 정치경제학자도 아니다. 그는 미학자이다. 미를 추구하는 일본 정신의 대변자로서 그는 칸트 사상 속에서 자신이 동일시할 것을 찾았고 마르크스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세상에 구현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가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사상적 정점이자 한계라고 짐작한다. 일본 정신이 욕망하기 위해 필요한 '현실'들 중 가장 큰 스케일의 현실이 '인류'라는 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인류의 자기실현이 막바지에 왔다고 느낀다. 현재 인류 역사를 추동하는 다양한 힘들은 각자의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고 이제 평화(죽음)를 이루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고진의 논의가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그가 시대를 잘 만났기 때문이며, 그의 욕망이 앞으로의 전망과 우연히 맞아떨어진 덕분임에 불과하다. (물론 고진이 천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가 마르크스에 마침표를 찍는 작업에 고진은 대단히 유용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수단으로 마르크스를 아주 능숙하게 활용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사상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뭔소리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진은 마르크스에게서 취할 점과 그의 한계를 명확히 해줌으로써 우리가 다음 단계로 완전히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의 또 다른 책 '트랜스크리틱'을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