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즉 책 읽기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책 읽지 않기'를 알아야 한다. 그럼 '책 읽지 않기'란 무엇인가. 바로 삶이다. 내가 삶을 사는 동안은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는 동안은 삶이 멈춰 있다. 삶은 무의식적 행위의 영역이고, 독서는 의식적 행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삶과 독서를 명확히 구분해야 독서의 목적이 분명해진다. 독서를 포함한 모든 '삶을 멈추는 행위'는 결국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함이다. 전진을 위한 후퇴, 발산을 위한 수렴이다. 그 목적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독서를 시작한다면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위의 명제는 전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독서에 복무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독서에 맛을 들이면 들일수록 커지는 위험이며, 이른바 고수라는 사람들이 이러한 함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독서 행위를 살펴보면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삶의 수단으로서의 독서, 삶의 확장으로서의 독서, 삶의 대체재로서의 독서. 물론 이 유형들은 일종의 이념형들이며, 현실에서는 이 세 가지가 뒤섞인 형태로 존재한다.

먼저 삶의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살펴보면, 쉬운 예로 자기계발서나 '30세 이전에 1억 벌기' 류의 책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활용하는 것이다. 가장 건강한 독서 자세다. 
 
둘째로 삶의 확장으로서의 독서. 일반적으로 일려져 있는 독서의 효과로, 책을 매개로 한 간접 체험을 통해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삶의 경계를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 자세가 갖는 위험은 독서가 '간접' 체험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체험이란 나와 현실과의 만남이다. 따라서 '간접' 체험이란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것은 체험이 아닌 해석이다. 해석을 체험인 양 받아들인다는 것은, 원래 해석자가 되어야 할 내가 자신의 권리를 저자에게 내어준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내가 책을 통해 삶의 경계를 확장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나의 해석할 수 있는 힘을 버리고 저자의 해석에 굴복하는 일이 벌어진다. 저자가 빼어난 정신의 소유자라면, 이것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나의 권리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를 양도한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을 타인의 호의에 무력하게 맡겨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를 체험으로 여긴다는 것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반증이기에, 문제 또한 심각해지기는 힘들다.

셋째로 삶의 대체재로서의 독서. 이것은 가장 병리적인 독서 자세이며, 소위 식자층에서 발생 빈도가 높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가. 역시 키워드는 해석이다. 내가 해석하고 싶지만 해석할 능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해석에 의존한다. 이는 일시적으로는 좋고 또 필요하다. 배우면 좋으니까. 그런데 무엇을 배우는가. 다른 이들의 해석을 배우는가. 아니다. 다른 이들이 해석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흔히 경제학에서 하는 말로 '배고픈 자에게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라는 격언이 있다. 참으로 경제학에서는 부적절하면서도 교육에 있어서는 적절한 말이다. 다른 사람의 해석을 보면서 그 해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을 역추적해나가는 것, 이를 통해 그 해석이 탄생하는 기원을 알아내는 것. 이것이 다른 사람의 해석을 접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삶을 대체하는 독서를 하는 이들은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이들은 삶이 해석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정신이 고양된 이들이지만, 스스로 해석하는 대신 남의 해석으로 자신을 채우는 방법밖에 모르는 비루한 이들이다. 그러나 고양되기 위해서는 비루함을 거쳐야 한다. 이들이 가장 심오한 해석들을 '30세 이전에 1억 벌기'를 읽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정신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채로 장서만 늘리게 된다면 종국엔 책을 아예 안 읽느니만 못하게 된다.

앞에도 말했지만, 이 세 가지 유형은 현실에서 뒤섞인 채로 존재한다. 또한 노력하고 진보하는 사람에게 이 세 가지를 모두 겪는 것은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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