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나르시시스트 생각학교 클클문고
조영주 지음 / 생각학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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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청소년 소설을 읽었다. 청소년기에 이렇다 할 추억은 없지만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뭔지 모르게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하고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겪어 온 또래들은 만만한 친구 하나를 타겟으로 정해서 매일같이 조리돌림하고 괴롭히며 심지어 돈을 뺏기도 했다. 물론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아이들에겐 졸병처럼 추종하며 그들의 말에 동조하고 그들이 빈번히 저지르는 무례함에는 술렁술렁 받아들였다.

나는 돈만 안 뺏겼을 뿐 앞서 언급한 만만한 친구 하나였다. 친구가 없어 늘 눈치를 보았고, 키가 큰 편임에도 몸을 숙이고 다녀야만 했다. 내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걸 싫어했던 한 아이가 엄청 꼽을 주고 욕을 퍼부었기 때문이다(나의 번호였던 숫자 6조차 혐오스러워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쭉 왕따를 당해서 지금까지 친구가 없다. 물론 나 자신도 겁이 많고 친구 대하기 서툴렀던 문제도 있었지만(이 문제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오해를 샀다).

청소년기의 왕따는 대개 차이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해환은 다른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없고 친구들과 다른 표현을 쓰는 소위 유식한 척을 한다고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최고 인기인인 나애의 눈에 들며 절친이 되었다. 나애는 뚱뚱하고 못생겼던 해환의 외모를 변화시켰고, 스마트폰도 선물하는 등 갖가지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콘텐츠였고, 해환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해환은 수학 문제를 어려워하던 왕따 정안을 도와주면서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둘만의 교환일기를 나애에게 들켰다. 그리고 정안도 나애의 모함 때문에 왕따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일은 돌고 돌아 나애에게로 돌아왔다. 나애가 왕따를 당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예쁘고 인기 많은 부잣집 공주님이 아니었다. 아무도 그녀의 연기에 대응하지 않았다. 나애는 학교를 더 다니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내가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남을 괴롭히는 게 옳을까. 나만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면 그만일까. 잘못된 줄 알면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건 왜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단순히 왕따 시키면 안 된다는 가르침보다 청소년기의 갈등 상황에 초점을 두고 나라면 어떤 결말을 선택할지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해환이 자신의 일기장을 모두 모아 나애에게 가져다주러 가는 길목에서 끝난다.

나는 친구들의 의견에 대체로 동조했고, 그들에게 항상 내 몫을 양보했다. 친구 때문에 엄마나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고, 내 권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런 일이 누적되면서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주장을 못하는 편이다. 좀 더 성숙했다면 친구들에게 휘둘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친구의 많고 적음이 우리 때는 큰 권력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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