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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난 새벽길 - 한수산 순례 에세이
한수산 지음 / 생활성서사 / 2023년 9월
평점 :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인물의 새벽길은 단순한 여로가 아닙니다. 하느님과 성모님에 대한 굳은 신심 말고 아무것도 없는 빈곤한 나라였던 조선의 신앙 전파를 위해 걷고 또 걸어온 아름다운 길입니다. 겉으로 보면 그저 어렵고 험하기만 한 길만 골라서 간 것처럼 보이지만 가톨릭 교우들에게 주어진 길은 그 길밖에 없었습니다. 힘들지만 불평하지 않고 담담히 그 길을 걸어온 세 인물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되어야 할 분들입니다.
새벽길을 떠났던 세 인물에 대해서 저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잘 몰랐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위대한 분들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탄식을 하게 될 겁니다. 특히 저는 입교한 지가 약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더 깊이 다가옵니다. 저보다 오랜 신앙을 유지하신 분들도 기쁜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하는데 저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주일미사만 겨우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큰 줄기는 백두산에서 ‘요한 크리소스토모’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선생님이 브뤼기에르 주교님과 최양업 신부님의 새벽길을 찾아 나서는 여정입니다. 책에 수록된 사진이 선명하고 깨끗해 마치 함께 순례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성지 순례라고 하면 주로 알려진 장소가 이스라엘, 유럽 등지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길은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멉니다.
선생님이 걸어가신 길은 평탄하고 넓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앞서 가신 두 분의 새벽길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책의 문장마다 선생님의 고생과 눈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읽기만 하는데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선생님은 이 책 말고도 여러 책을 많이 저술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고생하셨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잘 읽고 실망하지 않도록 서평을 써서 올리는 일이겠지요.
만일 이 길이 괴로우니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길은 나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럼에도’ 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길은 오롯이 ‘선생님만의 순례’입니다. ‘황금의 입’이라고 불렸던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이름대로 글 쓰는 능력을 하느님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일하는 순간 그 일은 더 이상 고행이 아니게 됩니다. 선생님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셨을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저의 온라인 묵주 장사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장사를 시작한 지 약 한 달 정도 됐지만 아직 팔리는 물건이 없습니다. 제가 파는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비주얼이 좋지 못해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묵주 판매하시는 분들보다 신앙연수가 매우 짧은 축에 속하는 제가 묵주에 대해 뭘 그리 잘 알겠냐마는 일단 시도해 본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합니다.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저의 부족한 재능을 나누라는 하느님의 계시겠지요.
이렇게 보면 선생님도 저도 하느님께 제대로 붙들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는 저입니다만 좁은 방에 성모상과 각종 성화들을 비치해 두고 책상에 앉을 때마다 그분을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약 8년 간 개신교 신자였다가 2019년에 가톨릭으로 갑자기 입교하면서 느꼈지만 저는 하느님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일을 시작하게 된 저 또한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