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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 - 오타쿠 겸 7년 차 일본어 번역가의 일과 일상 이야기
소얼 지음 / 세나북스 / 2023년 4월
평점 :
번역하고 있지만 차마 뭘 번역하는지는 말할 수 없다. 번역가는 맞는데 어떤 분야의 번역가인지는 차마 소개하기 힘들다. 그렇다. 저자이신 소얼 선생님은 7년차 프리랜서 일본어 ‘성인물’ 번역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인물만 번역하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맡고 계시는 번역일의 대부분이 성인물일 뿐이다.
성인물을 번역한다고 하면 대체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데 선생님 주변에는 그런 분이 없었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네가 성인인데 무슨 상관이니?” 라고 하셨다. 성인물의 ‘성’자만 꺼내도 경기를 일으키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전혀 달랐다(물론 성인물을 고르면서 웃지 못 할 굴욕도 겪었지만).
소얼 선생님은 성인물을 번역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로써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인물에 등장하는 수위 높고 질펀한 행동들을 실제로 희망하거나 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책의 앞부분에는 선생님의 스케줄 노트가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오는데, 여기서 성인물을 다루는 것이 단순히 일일 뿐임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이 일을 무척 사랑한다. 선생님이 번역을 시작하게 된 첫걸음이고 계속해서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님의 번역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의 후기와 감사가 선생님이 지금까지 번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성인물에 딱히 관심이 없는 나도 선생님이 번역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굳이 성인물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아는 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소얼 선생님은 ‘성공한 덕후’라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