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허찬욱 지음 / 생활성서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꽤 여러 편의 신앙서적을 읽었습니다만 요번 책은 느낌이 색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새파란 표지와 독특한 느낌의 글꼴이 이 책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슬픔을 더 많이 강조하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본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색상이 파랗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좋습니다.

이 책은 슬픔을 다루고 있지만 슬프기만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며, 그 누구도 당사자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조금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슬픔에 잠겨 있으며, 한편으로는 타인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기도 합니다. 저의 슬픔은 꽤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따돌림을 길게 겪어 온 지난날을 떠올리면 슬픔과 고통이 배가 됩니다. 그 상처로 인해 잘못된 인간관계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이 괴롭습니다.

사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때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사정이 워낙 좋지 못해서 남을 생각하기에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남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점은 2016년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부터였습니다. 그 때는 하느님을 전혀 몰랐지만 저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저는 저의 이야기를 비루한 레퍼토리마냥 읊어댔을 뿐이었는데 의사는 저의 장벽을 넘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습니다. “나연씨한테는이해해주고보듬어주는사람이없었네?” 라고 말한 것입니다. 별 것 없는 그 한 마디는 저의 인생을 모조리 관통했어요. 2년 뒤 바뀐 의사는 저의 어깨를 직접 안마하기도 했지요. “많이뭉쳤네요?”

저는 여기 거론된 의사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작은 호의에 일평생 쌓아 온 장벽이 허물어졌고 저의 우울은 조금씩 호전되어 갔습니다.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고 심지어 허락한 적도 없는 호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저와 연배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던 그들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좀 힘들었습니다.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작은 이야기입니다. 의사들의 작은 호의에 철옹성 같은 장벽이 허물어지듯이 약한 것, 작은 것들이 슬픔과 고통을 끌어안습니다. 강한 것이나 큰 이야기는 슬픔과 고통을 어루만지지 못합니다. 너무 강하면 약한 것들에게 부담을 줍니다. 너무 큰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들을 다루지 못합니다.

저는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만 슬픔을 감당해낼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겼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지만 늘 슬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슬퍼도 괴로워도 한 걸음씩 내디디며 저의 일상을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의사들의 호의도 있지만 그 시점에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자녀가 됨으로써 내면의 힘이 생겼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