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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 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2년 12월
평점 :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다. 보통 이런 경우 나중에야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머리가 자주 아픈 적이 있었는데 그게 우울증의 증상이 아니었을까. 내가 학교를 다닐 적에는 정신과는 고사하고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것도 문제가 있어서 다닌다는 오명을 받던 시기였다.
이 책은 환자들의 다양한 증상들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지를 쉽고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공개해도 될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도 나온다. 읽는 우리야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지만. 여기에 나온 환자들 중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봤다.
이 책의 저자는 런던의 정신과 의사인데 여느 의사들처럼 약물을 처방하는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증상에는 이런 약이 필요하다든가 같은 설명도 없다. 대신에 환자들의 본질적인 문제를 직접 마주하게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과와 마찬가지로 정신과에서도 약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삶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바꿔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도 6년이 넘도록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우울증 약은 초기에 별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르지 않고 꾸준히 먹다보면 자살생각이 조금은 낮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한다. 짜증도 없어졌다. 나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잠복해 있었다가 성인이 되어서 재발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치료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울증 약의 가장 큰 부작용은 체중 증가와 졸음이다. 원래 아침잠이 없고 체중도 50kg대 초반을 유지했지만 약 복용 후에는 체중이 배로 늘어나버렸다. 잠도 많이 와서 집에만 있으면 누워있기 바쁘다. 이러한 사안은 어쩔 수 없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수 잔의 커피를 마시지만 별반 다르지는 않다. 그럼에도 다행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약을 줄여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약을 하루라도 거르면 살아가는 데 많은 불편을 느낀다. 피치 못할 사정을 빼놓고 외래를 거른 적이 없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던 기간에는 우울과 불안, 떨림 등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단 한 순간도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아직 약을 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약을 끊을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었다. 이제는 줄이는 것을 넘어서 아예 안 먹어도 되도록 나의 삶에도 변화를 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