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님·밤 - 최민순 신부 시집
최민순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1912년에 태어나 1975년에 돌아가신 최민순 신부님의 시집이 새로 나왔다. 신부님은 『시편과 아가』, 『단테의 신곡』, 성녀 대 데레사의 『완덕의 길』과 『영혼의 성』 등 다양한 그리스도교 걸작들을 번역해 오신 분인데 거기다가 시집까지 내셨다고 한다. 지금 내가 읽은 책은 그의 시집 《님》과 《밤》을 합본한 것이다. 책은 고급스러운 양장에 올컬러 삽화로 되어 있어 소장가치도 매우 높다.
《님 · 밤 – 최민순 신부 시집》에는 신부님이 생전에 쓰셨던 90여 편의 시가 모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어느 것 하나 빼거나 더함이 없다. 원문은 가급적 살리되 주석으로 대체하고, 외국어는 옆에 우리말 표현을 더했지만 읽는데 전혀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철학공부를 하면서 주석 읽는 데 눈 빠진다는 느낌이 들곤 했지만 이 책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신부님의 시에는 오로지 한 존재이신 하느님을 위한 뜨겁고 절절한 사랑이 들어 있다. 작가, 번역가, 시인 등 하느님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셨는데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우쭐하거나 하지 않는다. 대표작 〈두메꽃〉이 생각난다.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중략)
해님만 내 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서 숨어서 피고 싶어라
-최민순, 〈두메꽃〉 중에서
신부님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되 자신의 본분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이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결과는 하느님께서 판단하실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난을 주신다면 가난하게 살고, 순교를 허락하신다면 기꺼이 순교에 임하는 그런 자세가 그리스도인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이 책에는 성녀 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그리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시가 우리말로 수록되어 있다. 번역 시편이라고 적혀 있으니 성인성녀들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읽어보면 마치 신부님이 직접 쓰신 시처럼 느껴진다.
최민순 신부님의 역서를 조금이라도 읽어봤다면 이 책은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고백록』, 『단테의 신곡』 등 신부님의 역서를 무척 사랑해 온 터라 요번 책도 마음에 든다. 단순히 서평용으로 마무리하기보다는 시간을 내어 깊이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