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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ㅣ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평점 :
갈증이라는 단어에 ‘녹색’이 붙어있어서 읽기 전에는 환경 문제와 연관된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환경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소설책의 맨 뒤에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따르면, 에드워드 윌슨의 표현에서 따 온 말이라고 합니다. 녹색 갈증이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입니다. 세상에 널린 게 색깔인데 왜 하필이면 녹색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윤조와 나의 이야기입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할머니를 잃은 윤조, 패션 감각이 떨어지는 엄마와 언니를 둔 나는 친구 사이인 것으로 보입니다. 몹시 불우한 처지에 있는 윤조의 학교생활은 반대로 평화롭고 조용합니다. 동급생들에게 집단 다굴을 당하는 부반장을 관조하듯 바라볼 뿐 나서서 도와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윤조는 정리되지 않은 집에 나를 초대해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버립니다.
나는 집을 나와 모텔에 숙식하며 일합니다. 윤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애인이던 명과도 헤어졌습니다. 한창 코로나가 극심하던 시절,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오던 때입니다. 미역과 물이 없어서 모처럼 집에 돌아왔지만 엄마와 언니는 오랜만에 온 작은딸·여동생을 반기지 않습니다. 엄마와 언니는 각자의 직장을 그만둔 채 집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애인에게, 언니는 비즈 꿰기에 몰두하며 그렇게 서로의 영역에 갇혀 있었습니다.
뒷부분에서는 모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납니다. 엄마는 왜 애인을 산에서 밀었는지, 윤조가 내민 보석함에는 무엇이 들어있었는지(초반에는 빈 괄호로 등장합니다), 윤조는 왜 이야기 속에 갇혀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엄마의 애인은 사실 가정이 있는 남자였고, 윤조가 내민 보석함에는 잘린 손가락이 들어있고, 윤조라는 인물은 현실에 없고 내가 지어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이 책의 결말은 가족 간 갈등 해소, 명과의 재회 등과 같은 희망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왜 이렇게 끝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조의 집안 분위기가 다시 거론되어 그녀와 함께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사실 첫부분만 읽고 윤조가 남성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못하는 작은딸·여동생 노릇을 윤조가 척척 해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여성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실제 내가 겪고 있는 이야기와 소설이 뒤섞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녹색 갈증인 것도 윤조의 등장으로 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거론했듯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욕구이니 말입니다.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는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윤조를 등장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윤조는 나의 생명이자 삶의 의미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