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 - ‘기억’보다 중요한 ‘망각’의 재발견
스콧 A. 스몰 지음, 하윤숙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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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달리 기억을 많이 하는 편이다. 너무 많이 기억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튕겨 낸 적도 여러 번이다. 심지어 일어난 지 20년도 더 넘은 일에도 후회하거나 화가 나기도 한다. 때로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나를 당황해하기도 한다. 기억을 잘하는 것은 축복일 수도 있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나의 기억은 죄다 상처들로 얼룩져 있어서 굳이 기억해봤자 좋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화와 치매 전문 의사로서 망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망각이 병이 되면 치매가 되겠지만 사람이 자라면서 어느 정도의 망각은 건강한 과정이라고 본다. 저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여러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인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망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망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적당히 잊고 사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나는 특히 혼자 있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옛 생각에 사로잡힌다. 옛 생각이 많아질수록 현재의 위치를 잊어버리게 된다. 따돌림을 심하게 겪은 과거, 실수가 많았던 과거 등 여러 부끄러운 일들을 많이 기억하다보면 정신적 에너지를 다 써 버린다. 그러다보니 뭐라도 해야 하나 싶어 휴대전화로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을 수시로 확인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시간 낭비인 셈이다.

게다가 나는 성질도 몹시 급한 편이다. 항상 뭔가를 쉽고 빠르게 하려는 욕구가 지극히 강하다. 조금만 더 천천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밀고 나간다. 그리고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어긋나면 실패로 간주하고 좌절해버린다. 처음의 충동적인 생각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이 인지 휴리스틱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적 겸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다.

그렇다고 저자는 기억을 완전히 경시하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름 같은 것 말이다. 기억은 대개 관심의 여부와 직결된다.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이야말로 큰 관심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관심이 전혀 없음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망각은 이러한 반면 알츠하이머병은 서서히 진행되지만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주는 망각이기 때문에 병이라고 해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정상적인 망각과 질병으로서의 망각은 분명히 다르다. 저자는 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기억을 부정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설령 병적 망각이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울러 치매 역시 여느 질병처럼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며 책을 맺는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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