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글쓰기 -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문장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명숙 옮김 / 북바이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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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저서다. 나는 읽다가 미처 이해하지 못해 겨우 한 장만에 책을 덮어버렸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마침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공지가 나와서 신청했다. 받아든 책은 역시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했고(4월에 읽었던 파티마는 두꺼운 편도 아니었다), 읽는 데 조금 어려웠다. 독자로서의 내 역량이 모자라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도 일정 분량을 꾸준하게 읽어나간 결과 약 일주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전 에세이와 문장들을 모은 것이다. 특히 자기만의 방에 관한 분량이 압도적이다. 보통 자기만의 방이라고 하면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라는 부분만 읽고 마는데 울프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울프가 살았던 시대의 여성들은 직업을 고르는 데 한계가 있었고, 재산을 가질 수도 없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울프의 주장은 대단히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울프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 따로 돈을 벌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울프가 예견한 대로 되고 있다. 여성 작가들이 늘어났고, 여성들도 재산을 가질 수 있고, 집세도 벌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받고 있고, 병역 의무가 없다. 게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들과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감형받는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렇다는 거다. 외국에는 여성도 남성들처럼 똑같은 형량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남녀평등을 하려면 여성을 무조건 보호해야 할 게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일정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서사를 논하면서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주제에 조금 벗어난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꼭 한 번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여성이 보호를 받지 않게 될 거라는 울프의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다. 여성을 향한 보호는 여성들의 인권이 많이 낮을 경우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미 대등한 관계가 되었으니 굳이 과잉보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과거의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배웠다. 그러나 그 때의 상황 때문에 지금 와서 남성들에게 더 나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울프는 요즘의 페미니스트들과 다르게 남성들을 가해자로, 여성들을 피해자로 보지 않았다. 다만 여성과 글쓰기, 직업, 지적 능력 등 여성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울프 역시 여느 여성들처럼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명문가 출신답게 방대한 독서량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지식인 중 절대다수가 남성이었던 당시에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자리 잡은 울프가 멋있게 느껴졌다. 제아무리 명문가 집안에 돈이 많았다고 해도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서평을 쓰면서 갑자기 자기만의 방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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