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여행 - 우리의 여행을 눈부신 방향으로 이끌 별자리 같은 안내서
최갑수 지음 / 보다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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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애 작가 중 한 분인 최갑수 작가님께서 신작을 내셨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는 어느 곳으로 떠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작가님께서, 친절하게도 여행 안내서를 발간해 주셨다.

'당신과 함게 가보고 싶은 그곳'이라니... '우리의 여행을 눈부신 방향으로 이끌 별자리 같은 안내서'라니....! 거기에 심지어 BTS정거장이라니!!!!!!

나는 표지에서부터 치인 덕심을 달래며,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우리 인생의 행복한 기억은 대부분 '즐겁게 놀았던'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대부분은 여행이라는 것도 알게 됐구요. 그러나까,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조금 더 놀아야 할 것이고, 더 행복하기 위해 더 여행해야 할 것입니다.-4

시간이 없습니다. 주저하고 망설이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이 책은 당신이 더 여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당신이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당신의 여행에 별자리 같은 안내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5

코로나 시기에 여행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어서일까. 더욱 와 닿는 말이였다. 시간이 없다. 주저하고 망설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나는 이 책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단어가 '인생', '쉼', '여행', 그리고 '함께'인 것 같다.

많은 여행지들이 페이지를 따라 흘러가는 중에 여행의 소중함, 현재의 소중함, 그리고 사랑의 소중함을 계속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은 감정을 움직이는 사진과 글들 뿐 아니라, 좋은 여행지와 함께 맛집 소개까지 정말 여행 안내서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여행 챕터의 말미에는 여행팁과 함께 그 지역 맛집이 있어 꼭 한 번 추천해 주시는 맛집에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여행지가 나오는 데 그 장소들에 얽힌 역사적인 사건들, 또는 개인적인 사연들, 또는 시인의 시 한구절이라든지, 누군가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말들이 각 장소에 대한 이미지를 더 뚜렷하게 하고, 궁금증을 일으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고/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정호승의 시<선암사>중에서-240

나는 작가님의 사진이 좋다. 글이 좋다. 벌써 작가님의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작가님의 사진과 글은 참 내 취향이다.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고, 추억에 잠기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이번 책에서 참 좋았던 것은 모두 국내 여행지였다는 것이다. 내가 가 본 곳도 있고, 처음 들었던 곳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방방곡곡 예쁜 곳이 참 많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또 해외 못 나가면 어때, 우리나라에도 못 가본 곳이,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번지기 시작한 노을은 삽시간에 섬을 덮친다. 섬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맹렬한 기세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황홀한 일몰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지금은 혼자이지만 당신을 꼭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한다. 햇빛으로 넘쳐나는 다정한 사월의 섬, 자월도. 당신 손을 잡고 따뜻하게 데워진 해변을 맨발로 걷고 노을 속을 산책하는 일. 당신에게 이 섬을 보여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대신하고 싶다.-206

내가 작가님 글에서 참 좋아하는 부분들 중 하나인데, 작가님은 혼자 있는 곳에서 늘 함께를 그리시는 것 같다.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걸 먹으면. 함께 오지 못한 좋은 사람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혼자 가는 여행도 좋고, 함께 가는 여행도 좋고! 여행은 일단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번 책에서 새로웠던 부분은 작가님의 직업에 대한 생각이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로 남기는, 여행작가라는 직업이 일개 회사원인 나에게는 무척 매력적이고도 부러웠었다. 그러나 직장에 가기 싫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나보다.

팬데믹 이전,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작가였다. 회사원이 회사에 가기 싫어하듯, 여행작가인 나는 여행 가는 것을 싫어했다.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세팅하는 그 시간이 너무 지겨웠다. 그리고 팬데믹이 왔다. 내 여행은 조금 달라졌다. 팬데믹 속에서 나는 가족과 함께 느리게, 느긋하게 이 땅을 여행했다. 사람들과 떨어져 우리끼리 머물렀다. 나는 여행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족과 여행을 하며 나는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것인지 희미하게나마 깨달아 가고 있다.-167

팬데믹이 끝나면 뉴욕과 세렝게티, 아이슬란드, 조지아, 남극엘 가려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안 가도 된다. 못 가도 그뿐이다.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계획중인 숲여행은 해 보고 싶다. 이 땅의 오래된 중국집에 다 다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쨌든 나의 여행은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향할 것이다. 거기에 다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169

'취미'가 '직업'이 되고, '일'이 되면, 일이 취미가 되는 게 아니라, 취미가 사라진다고 그랬던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작가라니....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찍으시면서 카메라 세팅하는 시간이 너무 지겨우셨다니......흐규흐규....

그럼에도 책의 말미에는 아직도 사진을 아직도 잘 찍고 싶다는 작가님의 말에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음을 느꼈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한 해는 없었던 것 같다. 올해도 마찬가지.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고 그 일들을 처리하고 해결하고 때로는 무시하느라 조금은 지쳤다. 그래서 쉬기로 했다. 1월이니까. 다시 달려야 하니까. 다시 힘을 내야 하니까.-338

온 힘을 다했던 적이 있었던가. 일에도 사랑에도 여행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내일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해야겠다. 우리는 어쨌든 다시 시작해야 하고, 다시 시작하기엔 '내일'보다 좋은 날은 없으니까.-345

​다시 시작하기에 '내일'보다 좋은 날은 없다.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가고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도, 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시간들 가운데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벌써 10월이다. 올해가 벌써 세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나의 올해도 매우 다사다난했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

은행나무가 노오랗게 물들고, 산천이 알록달록 물드는 시기, 나도 작가님을 따라서 10월에만 열린다는 숲으로 여행을 떠나볼까한다. 누군가의 슬픈 사연에 얽힌 로맨스를 따라서 안내서에 적힌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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