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보다는 신선함, 충격에서 덜했다. 다들 극찬을 하던데 나는 보고 나서 갸우뚱 했다. 로봇과 사소한 것 하나부터 열까지 관계를 맺어나가는 인간들과 점점 인간에 가까워지는 로봇들의 따뜻한 이야기. 여기에 나오는 디지언트는 처음에는 다마고찌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디지몬 수준으로 진화하는(그렇다고 적과 싸우려고 거대하게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진화) 존재다.


그래서 나는 이 설정이 전혀 새롭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굉장히 집중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어딘가 익숙하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단편집에서 느꼈던 그 놀라운 파괴력을 기대했기 때문에 이렇게 느낀 걸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많이 밋밋했다. 디지몬 어드벤처가 소설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랄까...


근데 또 어떻게 보면 되게 로맨틱한 이야기다. 그래, 테드 창도 창작노트에 썼듯이 이건 ‘관계’에 대한 이야기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이야기다. 로봇과 인간 사이에 진짜 상호작용하는 관계가 가능한가. 테드 창은 가능하다(라기 보다는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모르겠다. 소설에 나온 집사 로봇을 만드는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인간처럼 반응하지만 인간을 대할 때와 같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존재” 정도 좋을 것 같다. 진짜 인간과의 관계도 얼마나 어려운데, 그것도 모자라 로봇이라니? 좀 생각해보면 로봇과의 ‘완전하게 대등한’ 관계를 원하는 인간은 없지 않을까? 그런 감정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다들 뭔가를 바라고 요구하고 일방적인,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그런 게 아닌가?


젠장. 에라 모르겠다. 어쨌든 소설 속 인물들의 애정은 내게 비약으로 느껴졌다.

혹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작품을 음미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우당쾅쾅 적을 해치우고 뜨거운 우정을 나누는 디지몬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똥꼬빨듯 극찬하는 사람들이 좀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실력있는 작가라 재미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10점짜리는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
임근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책은 같은 판형에 비슷한 두께라도 예전보다 더 가볍다. 우연히 내가 최근에 본 책들만 그런 건지, 아니면 종이가 바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좋다. 한 손으로 들고 오래 읽어도 손목에 부담이 없으니까.


제목은 참 길고 거창하기도 한 이 책은 무게만큼이나 내용이 가볍다. 저자는 유명한 예술가(사실 이 예술가들을 선정한 기준이 뭔지 궁금했다. 비꼬자는 게 아니라 내가 예술가를 잘 몰라서 그렇다. 책에 있는 예술가 중에 아는 사람은 백남준, 앤디 워홀 정도였다.)들의 에고트립(Ego-trip : 제멋대로 구는 것)을 모아서 13가지로 분류해 보여준다.


다 읽고 솔직히 실망했다. 책의 뒷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책은 빈약한 자아를 소유한 젊은이들에겐 자아 확장의 다양한 방도를 제시함으로써, 선량한 인간의 삶이냐 극악한 이무기의 삶이냐, 하는 흑백의 선택을 강요하는 책이다.”

글쎄.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자아는 남이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한다고 확장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도 이렇게 깊이 없이 단순히 괴상한 짓을 한 예술가들의 행적을 서술했을 뿐인 졸저는 자아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에 어떤 철학이나 사유도 없고 그냥 나열일 뿐이었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으면 적어도 저자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담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자료조사만 하면 쓸 수 있는 책, 그 정도다.

사진은 재밌는 게 많았다. 하지만 가볍다. 너무 가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회가 닿아 관심있었던 시각디자인을 공짜로 배우게 됐다. 그것도 벌써 5개월 째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다. 지금의 학원들은 학교보다 더 학생의 취업률에 신경쓴다. 취업률이 높은 학원으로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부지원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이를 악물고 배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 역시 어느새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밥벌어먹기 힘든 학과를 나와서 변변한 기술도 없는 나는 어쩌면 여기서 배운 기술로 취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간혹 들때마다, 그리고 선생이 그러한 압박을 주고 내가 열심히 만든 작품을 평가할 때마다 편두통이 몰려온다.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 끔찍한 상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디가 콱 부러져버리면 몇 개월 더 유예를 얻을 수 있을텐데.... 스스로 생각해도 참 한심하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청춘을 방기할 용기가. 


뇌에서 생각들이 주저리주저리 자리를 못잡고 뒤섞인다. 젠장. 나는 스트레스에 이다지도 약한 인간이란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트] 페르세폴리스 1~2 세트 - 전2권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979년, 겨우 10살 때 이란혁명을 겪은 후부터 강제로 차도르(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검은 베일)를 쓰고 다니게 된 마르잔. 그런데 이 아가씨 왈가닥은 물론이고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사회에 반항적이다.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맞서고, 집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고, 이란사람에 대한 편견을 수군거리는 서양 수녀들에게 창녀라고 받아치고, 무종교에, 프랑스에 유학을 가서는 마약과 환락에 절어 살다가 비관자살까지 시도했다가 고국에 돌아와서는 남자친구와 섹스를 한다는 사실을 이란 친구들에게 말한다.(이슬람권에서는 부부가 아니면 거리에서 남녀가 손만 잡아도 잡아간다는데 그런 소릴 들으면 어떻겠는가.)


이 아가씨 성격에는 집안내력도 한 몫 하는데, 그녀의 증조할아버지는 이란혁명으로 사라진 왕조의 왕자 중 한명이고, 삼촌은 반정부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정치범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부모님은 부르주아 지식인이다. 이래도 반정부주의자가 안되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10살 때 이란혁명을 겪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한다. 의미없는 죽음들. 그것도 영국, 미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에게(CIA가 이란의 석유를 국유화한 총리를 암살했다는 것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정부를 위해서....


이란 정부는 전쟁에 동원된 소년들에게 조악하게 만든 열쇠를 하나씩 줬다고 한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단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일부 부모들은 그렇게 죽은 아들들을 순교자라고 자랑스러워했다는 것.


숨이 막힐 것 같은 탄압과 통제. 여자는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도 안 되고 길에서 뛰어도 안 된다. ‘적나라’해서 강간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이런 나라를 못 견딘 많은 이란인들이 조국을 떠났고, 그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고 있다. 읽을수록 독재시절 한국이 생각났다. 이곳은 종교까지 얽혀있으니 더 맹목적이고 심하겠지.


인종은 달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데도 나 역시 단편적으로 접한 기사와 간접광고들에 의해 이 지역사람들에 대해 ‘위험하다’아니면 ‘불쌍하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반성한다. 아예 모르는 것보다 이렇게 어설픈 편견을 가진 것이 더 위험하다.


끝으로 이 아가씨 너무 당당하고 발랑 까져서(도대체가 이란 여자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담배에 프리섹스라니!)조금 재수 없다고도 생각했지만, 나는 이런 사회에서 절대 이 사람만큼 용기를 내고 당당히 살 자신은 없어 솔직히 질투가 났다. 아마도 질투가 나서 재수 없게 느껴진 것이겠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엉엉 2014-01-12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리뷰읽고 무지 읽고싶어졌다(!)
 
떠남
앨리스 먼로 지음, 김명주 옮김 / 따뜻한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아주 낯설고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 단편 '떠남'을 읽었을 때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서 나한텐 너무 어려운 건가?"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책을 찬찬히 읽어보니 단지 내게 익숙한 소설과는 쓰여진 방식이 다르다는걸 느꼈다.


나는(그리고 대체로 우리는) 잘 짜인 서사에 익숙하다.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의미심장한 복선과 놀라운 반전이 존재하며 강렬한 영화같은 소설. 혹은 차라리 B급을 지향하는 독특한 이야기에 익숙하다. 그런데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소설'보다는 차라리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 삶에서 마주치는 우연과 방황, 살아간다는 것의 불안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대학교 때 수필을 가르쳐주신 교수님께서 아직 에세이 문학을 보내주시는데, 거기에 실린 글에서 맡던 냄새를 이 책에서 맡았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재주다. 픽션을 논픽션처럼 쓰다니. 그러니까 내가 처음 느낀 낯섦과 불편함은 소설적 장치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아쉬웠던 점은 소설이 대체로 잔잔하다는 것과 번역자의 실력이 미흡하다는 점. 내가 느낀 불편함의 상당부분은 어색한 번역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최근에 나온 그녀의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