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완벽하게 내 것, 
완벽하게 홀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전통을 주장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문명의 이식은 어떤 시대, 어떤 곳에서도 항상 똑같이 
벌어져 왔다. 홀로 존재하는 문명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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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전에도 역사 속에는 이미 다양한 문명이 
있었다. 로마는 이들 문명을 모두 파괴하고 단일한 
문명을 이룩한 것이 아니다. 로마는 과거 문명의 
어깨에 올라탐으로써 무한한 유산을상속받고 
이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었다.
 "과거에 있었던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탔기 때문에
 더 멀리볼수있었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뉴턴이 한 이야기다. 로마는 과거 문명을 통해 더 많은 
것을보고, 더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었다. 만약 문명의 
투쟁이 누가 더 키가 크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라면,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탄 사람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문명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로마를 이길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 누구도 로마 문명의 어깨 위에 올라탄 자를 
아직까지는 이기지 못했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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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때때로 소리없이 찾아든다.
현재의 고민과 미래의 불안, 과거의 아픔이 삶을
갉아먹음을 인지하면 우린 쉽게 지친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나를 드러내기 쉽지않을때
철학은 큰 위안이 된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삶의 지혜와 위로로 다가오는 이런 철학책은
읽기 쉬운면서도 천천히 음미하며 곱씹을 수 있다.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철학자들의 오랜 고뇌와
사유로 명제화된 문장들이 현재의 나를 더욱 잘
비춰준다.
나를 비춰주는 거울로 철학을 가까이 할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질 수 있다.

죽음이 우리를 어디에서 기다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모든곳에서 죽음을 찾자.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자유를 미리 생각하는 것과 같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법을 잊는다. 삶을 잃어버리는 일이 
나쁘지만은않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삶에서
나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죽는 법을 아는 것이 우리를 모든 굴종과 
속박으로부터구원한다.
-몽테뉴 <수상록> 에서

"그들이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지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 나면 다시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더 현명하게 살면서 죽음을 
그다지 걱 정하지 않을 텐데."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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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에게 삶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굉장히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그는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유일하게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단하나라고 
말합니다. 바로 자살입니다. 자살을 염두에 두고,
삶이 정말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그의 철학의 핵심인 거지요.
p207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 알베르 카뮈

자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해야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 자유롭다.
- 페데르 쉬브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의 
일부로서 존재할 때 가능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하고 욕망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극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게끔 길러줄 건강한 공동체를 가꾸고 돌볼 
책임이지요. 이 문제는 자유와 책임이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출발점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습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없다면 의무를 실행할 
책임도 없겠지요. 칸트의 말처럼 ‘해야 한다‘ 속에는 
‘할 수 있다.‘가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p215

"필멸성이 우리 삶을 형성한다.삶에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하며,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가 죽어간다는 사실은 그 모든 것을
위협하기도 한다. 죽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아직은 절대 아니다." 
이게 바로 죽음의 역설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의미나 가치를 가질 수 없지만, 동시에 
죽음 자체는 바로그 의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위협합니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본 사람은 이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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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로부터 벗어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자기를 잊는 것, 그럼으로써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내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스스로를 내줄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말입니다.
머독은 사랑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고 말합니다
p173

우리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려면 머독이 말한 
의미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
라는 문장 뒤에는 이런 구절이 이어집니다. 
"예술과 도덕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발견이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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