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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학 기행 - 방민호 교수와 함께 걷는 문학 도시 서울, 개정증보판
방민호 지음 / 북다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

최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행을 가기 어려운지라 책이나 블로그, 유튜브
등을 보며 랜선 여행으로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책을 만났다.
광화문, 북한산, 서촌, 부암동, 청파동과 같은 지명은 그대로지만,
굴곡진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1900년대 초중반의
서울,
그리고 그 어두운 질곡의 시간을 증언해준 빛나는 우리 문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의 서울에서 펼쳐지는,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공감할 수 있는 슬픔과 아픔이 담겨 있다.
소싯적에 한국 근현대문학을 공부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오래 전 문학을 공부하던 그 때로 돌아간 듯한 "이중의" 시간 여행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총 열 두 명의 작가(이상, 윤동주, 현진건, 박태원, 박인환, 김수영, 이광수, 나도향, 임화, 손창섭, 이호철, 박완서)의 삶과
문학이 담겨 있다.
각 장마다 맨 앞에는 작품이 배경이 되었거나 작가가 태어난 곳, 또는
생활한 곳의 약도가 실려 있다.

1970년대생인 나로서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박태원이나 임화를 잘 알지 못했다. 1988년 월북문인 해금조치가 있었지만, 교과 과정에 반영된 것은 그 이후인지라 박태원이나 임화를 알게 된 것은 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이다.
(따라서 이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니신 분들에게는 박태원이나 임화가 낯설 수도 있다. 박태원은 정말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인데, 봉준호
감독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놀라운 유전자!)
<누구나 다 아는 작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한국 현대문학 전공자인 저자는 이 글이
"식상한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의식하고 썼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누구나 아는 작가들에 대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알아가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모더니스트라고만 생각했던 이상이 사실은 조선인이라는 강렬한 민족적 자각을 바탕으로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심을 가진 인물로 한복을 즐겨 입었다는 점, 우리가 흔히 기생 금홍이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라고만 알고 있는 <날개>가 사실 더
파고 들어가면 돈에게 절대적 권력을 부여한 자본주의적 현대성의 세계를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라는 존재로 형상화하고 그러한 세계와 싸우는 자의식적 존재의 투쟁을 그려낸 알레고리 소설이라는 점 등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표면적이고 때론 편향적이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이야기와 해석들이 가득 담겨 있다.
<손창섭의 재발견>
이 책에 소개된 열 두 명의 작가들과 그들이 생활했던 공간, 그리고
작품 속의 공간들, 그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는지라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꼽자면 <비 오는 날> <잉여인간>으로 유명한 손창섭의 이야기이다.
1922년에 태어나 2010년에 여든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손창섭은 1973년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기 때문에 오랫 동안 문단에서 잊혀진 작가로 존재해 왔는데, 저자는 일본을 방문하여 손창섭의 시조를 입수해 오는 등의 노력을 통해 그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 매우 특별한 문학인이라는 점을 재조명했다.
손창섭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생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책 속의 사진들>
당시 서울의 풍경 및 문인들의 사진도 인상적이다.

이상, 박태원, 김소운

영화배우로 활동할 정도로 잘생겼던 임화
<감상평>
어두운 시대를 밝혀준 우리의 소중한 문학과 문학인들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서울 곳곳의 풍경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깊은 이야기를 알아내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고가 느껴지는 책이다.
총 448쪽으로 얇지 않은 책이지만,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힌다.
1900년대 초중반의 서울(경성)로 여행을 떠나시고 싶은
분,
우리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으신 분,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지난 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의 말>
윤동주의 누상동 하숙집, 이광수의
홍지동 별장, 박완서 『나목』 의 주인공 이경이 미군 PX에서
일하며 사랑을 나누던 명동, 그곳에 영원히 깃들어 있을 것 같은 박인환 시인의 동방살롱, 지금은 길이 되어 버린 김수영 시인의 구수동 옛 집터, 손창섭이
일본에서 돌아와 어렵게 정착하여 외로운 소설의 길을 가던 흑석동, 이름만 들어 도 가슴이 뛰는 이상과
박태원의 종로, 광화문, 서울역, 청계천, 비극적 삶의 주인공이었던 프롤레타리아 시인 임화의 종로
네거리와 종로6가, 이북에서 내려와 고향을 잃은 이호철의
서울 인구 300만 시대의 종로3가, 너무도 빼어난 단편을 남기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 난 나도향, 일장기를 '지우고' 역사를 새롭게 보려 했던 현진건의 창의문(자하문) 너머 부암동.......
제가 발견한 이분들의 이야기를 정심한 곳까지 밝게 비추어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
독자분들이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서울을, 우리의
문학을 그리고 그 둘 사이의 특별한 '밀월'의 사연을 소중히
여겨 주신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