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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 이토록 멋진 작별의 방식, ‘간절한 죽음이라니!’
에리카 프라이지히 지음, 박민경 옮김, 최다혜 감수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10월
평점 :
#협찬 도서 #
2023년 8월 3일, 고(故) 조순복 씨는 스위스 의료조력기관 디그니타스의 도움을 받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조 씨는 65세에 유방암 2기 판정을 받고 10년간 투병했으나, 완치 판정을 받은 지 1년 만에 암이 뼈로 전이되어 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탄 채 장거리 비행을 감수하고, 약 5,000만 원에 달하는 비용까지 치르며 스위스까지 가야 했지만, 결국 그곳에서 스스로 선택한 평온한 마지막을 맞이했다.
이 책의 저자 에리카 프라이지히는 스위스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일하며 디그니타스에서 활동했다. 두 번의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되고 실어증에 시달려 자살까지 시도한 아버지의 조력사망을 도운 경험은 그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누구나 외압 없이 스스로 존엄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환자들을 돕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저자 역시 치명적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윤리적 갈등, 법적 책임을 감수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 속에서 흔들렸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마지막을 돕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 속에서도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 덕분이었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다. 가망 없는 불치병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 점점 몸이 굳어가는 다발성 경화증이나 루게릭병 환자, 치매로 판단력을 잃기 전에 스스로 마지막을 선택하려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서 빠르고 안정적이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음에 감사한다.

저자는 말한다.
"위급한 순간에 고통과 의존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는 확신만으로도 많은 환자들은 삶을 이어나갈 의지를 얻는다. 그리고 죽음을 선택한 이들은 평화, 감사, 기쁨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
나 역시 암을 경험하며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깊이 느꼈다. 그래서 이런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몸도 가누기 어려운 환자가 8,770km를 이동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존엄하게 삶을 마칠 수 있도록 제때에 합법적이고 안전한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저자는 반문한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며 신앙에 대한 견해도 제각각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죽느냐에 대한 의견까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이 질문은 우리 사회가 타인의 선택에 대해 더 관용적일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조력사망을 지지하는 것이 결코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아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바람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한 절차와 검증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존엄한 임종을 원하는 이들의 선택이 더 이상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의료조력사를 단순한 찬반의 구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념과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존엄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죽음을 두려움에서 존엄으로 바꾸어내는 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조력사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화하길 바라며, 언젠가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평화롭고 인간다운 마지막을 가능하게 하는 선택지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