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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소녀
브렌다 데이비스 지음, 유영일 옮김 / 올리브나무 / 2026년 8월
평점 :
#협찬도서

열일곱 살 노라는 미혼모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정신병원에 갇힌다. 1939년 영국, ‘정신결함법’은 사회적 규범을 어긴 이들을 ‘도덕적 백치’로 규정했고, 미혼모는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었다. 그렇게 빼앗긴 시간이 무려 47년이다.
이 책이 섬뜩한 지점은 폭력의 강도가 아닌, 그 폭력이 ‘이성과 과학’의 언어로 정당화되었다는 데 있다. 우생학을 진리로 포장한 권력 앞에서 노라는 순응하는 ‘길들여진 토끼’가 되어야만 했다. 무엇을 입고 언제 앉을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동의 없는 수술까지 감내하며, 그녀는 자유를 상상하는 힘마저 잃어간다.
그러나 《갇힌 소녀》는 통렬한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2부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 자넷은 노라를 진단하는 대신 동등한 인간으로 곁을 걷는다. 47년 4개월 만에 얻은 자유 속에서 노라가 스스로 살 집을 고르고 노래를 부르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준다. 노라가 비로소 되찾은 집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78세의 현직 정신과 전문의가 쓴 첫 장편소설이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라는 점이 이 회복의 과정에 깊은 진정성을 더한다. 오늘날 물리적 폭력은 많은 부분 사라졌지만, 정상성을 벗어난 삶을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배제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착한 딸, 좋은 부모라는 강박 속에 스스로를 가둔 우리 안에도 억압된 소녀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450쪽이 넘는 압도적인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힌다. 단순한 비극을 넘어 내 삶의 주체성을 돌아보게 만드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