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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평점 :
#협찬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
적어도 고통에 몸부림치며, 대소변조차 스스로 처리하지 못한 채 가족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남기는 죽음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목격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일주일 전까지 손자들을 업고 다니셨던 할아버지는 감기몸살처럼 자리에 누우신 지 일주일 만에,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향년 87세. 오랫동안 내가 생각하던 죽음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평온한 죽음은 사실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현실의 죽음은 대개 생명유지장치에 의지한 채 이어지는 시간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신체, 끝이 보이지 않는 통증과 기약 없는 돌봄의 굴레 속에 놓여 있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7%가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통증 없는 죽음을 꼽았고, 96%는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남기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압도적인 수치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유방암을 경험하면서 죽음의 존재를 더욱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사실 그 전부터 네덜란드나 스위스처럼 존엄사, 혹은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의사조력임종' 제도가 한국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 논의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겉도는 것처럼 느껴질까. 무엇이 문제이며, 우리는 아직 어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걸까. 그런 갈증과 궁금증 끝에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을 읽게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과 전문의, 의료인문학 교수 세 사람이 함께 쓴 이 책은 의사조력임종 문제를 둘러싼 다층적인 쟁점들을 차분하게 짚어낸다. 정확한 용어의 정의에서 찬반 논리, 한국 생애 말기 돌봄의 현실, 그리고 해외 사례까지 촘촘하게 담겨 있다. 나처럼 의사조력임종의 빠른 제도화를 희망하는 사람은 물론, 제도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의사조력임종 논쟁 자체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점검되어야 할, 우리의 생애 말기 돌봄 체계의 현실이었다.
나는 막연히 말기 환자라면 누구나 호스피스 돌봄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완화의료 대상은 암, 에이즈, 만성간부전 등 다섯 가지 질환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실제 이용자의 99%는 암 환자라고 한다. 암 사망자 가운데 호스피스를 이용한 비율조차 26%에 불과하고, 전체 질병 사망자로 넓히면 그 수치는 10% 아래로 떨어진다.
저자들이 지적하듯,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한다. 환자의 고통이 현대 의학으로도 더 이상 완화될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고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최소한의 돌봄과 지원조차 받지 못한 채 내몰린 결과인지를 말이다. 의사조력임종 제도화 이전에 질 높은 생애 말기 돌봄 체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논점들도 함께 던져준다. 누구에게 그 선택을 허용할 것인가. 말기 환자에게만 제한할 것인가, 만성질환이나 정신질환은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의사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죽음의 과정에 직접 개입해도 되는가. 자기결정권의 존중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가.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인간은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돌봄과 경제적 조건, 가족 관계,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주는 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살아갈 조건은 점점 무너지는데 죽음을 선택하는 길만 정교하게 마련된다면, 그것은 자기결정권의 확대가 아니라 사회의 책임 방기일지도 모른다.
책에 소개된 일본 영화 『플랜 75』 역시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한다. 고령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유도되는 사회.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사회가 돌봄의 책임을 조용히 포기하는 미래일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동경하는 해외 사례도 마냥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다. 조력자살의 선진 사례로 꼽히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는 설립자가 금품 수수 혐의로 기소되거나 고객의 유산을 취득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저자들은 우리가 의사조력임종을 바라볼 때 '선진국의 합리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라는 환상을 무의식적으로 덧씌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존엄'의 정의부터가 첨예하게 충돌한다. 찬성 측은 개인의 자율성을 존엄이라 보고, 반대 측은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재된 가치를 존엄이라 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개념적 논쟁 못지않게, 실제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는 공포와 절망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기자이자 작가인 케이티 엥겔하트는 『죽음의 격』에서 많은 사람들이 존엄성을 '괄약근 조절 능력'과 동일시했다고 썼다. 속옷에 실수를 하거나, 타인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하는 순간 삶의 존엄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때로는 복잡한 개념의 정의보다 사람들의 실제 경험과 목소리를 반영한 판단과 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 엄중한 논의의 출발선에 겨우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지금, 죽음을 단순히 '치료의 실패'로만 여기는 시선을 거두고 생애 말기 돌봄 체계 전반을 점검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 그렇기에 진정 중요한 것은 단지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사회적으로 보장되는가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충분한 돌봄 속에서, 극심한 통증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는 과연 가능할까.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은 의사조력임종이라는 하나의 선택지 이전에, 인간다운 마지막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란 무엇인지 오래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