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노자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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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도서



노자의 『도덕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고전들이 그렇듯,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켄 리우의 번역이 아니었다면 지금 『도덕경』을 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켄 리우와의 만남

켄 리우의 소설들은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 특히 대표작 『종이동물원』은 아들에게도 읽어주었는데, 너무 슬프니까 울지 마…해놓고 결국 읽으면서 내가 울고 말았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어김없이 울고 만다 --;;; 다섯 살 이후로 이야기가 고갈된 적이 없었다는 켄 리우는(너무 부럽다) 팬데믹 시대에 만연한 증오와 폭력을 보며 처음으로 자신 안의 ‘이야기’가 모두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만큼 깊은 절망 속에 있었다는 고백이리라. 그때 그가 붙잡은 책이 바로 『도덕경』이었다.

켄 리우는 “중국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공기 속에서 노자를 들이마시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절망 속에서 필사적으로 도덕경을 읽어 내려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수천 번의 번역 끝에 나온 이 번역이, 다른 번역은 건드리지 못했던 당신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릴지 누가 알겠는가?”

사실 켄 리우가 번역한 덕분에 도덕경을 처음 읽게 된 (나같은)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한국판 제목은 ‘길을 찾는 책 도덕경’이고, 표지에는 ‘무엇이 우리를 삶의 주인으로 살게 하는가’라고 쓰여 있는데, 영문판에는 ‘A new interpretation for a transformative tim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변혁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석. 그는 이 대전환기의 시대에,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새로운 번역, 새로운 경험

도덕경을 깊이 읽어본 적 없던 나는 도서관에서 여러 번역본을 빌려와 비교해 가며 읽었다. 1장의 맨 첫 구절인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부터 걸렸다. 우리는 흔히 “말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고 알고 있지만, 켄 리우는 이를 “걸을 수 있는 길은 영원한 길이 아니다”로 번역했다.

‘도’를 ‘길’로 번역한 이유가 궁금했다. ‘도’는 진리를 가리키는 추상적 개념이지만, 켄 리우의 ‘길’은 구체적이고 일상의 언어에 가깝다. 그는 독자가 ‘도’를 삶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길 바랐던 것 같다.


또 한 구절. “욕심이 없으면(무욕) 도의 오묘함을 보게 되고 욕심을 가지면(유욕) 겉모습을 보게 된다”라고 번역되는 부분을 켄 리우는 “마음에서 욕망을 비우라. 그래야 도의 경이로움이 들어온다”라고 표현한다. 마치 노자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 번역이다.

1장의 마지막에서도 “온갖 오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번역되는 부분을 그는 “놀라움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쓴다. 이 구절을 읽고는 마치 경이로운 ‘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초대장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밖에도 41장에서 우리가 흔히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고 알고 있는 ‘대기만성’을 ‘큰 그릇은 다듬어지지 않았다’라고 번역한 것도 신선했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작가가 설명하고 있다)



천천히, 한 장씩

이 책은 물론 한 번 읽고 치워버릴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81장으로 된 이 책을 하루 한 장씩 읽으며 생각하고, 명상하고, 되새겼다고 한다. 나도 그럴 생각이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지만, “모든 것을 담으려다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는 산만한 그림보다는, 원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만을 포착한 단순한 스케치를 선호한다.”는 켄 리우의 말처럼 그때 그때 내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들을 붙잡으려 한다.


무위: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행하기

노자 사상의 핵심은 역시 ‘무위’다.

“도를 깨달은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행하고, 말없이 가르친다”(2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이 없어진다”(48장).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음이다. 힘을 빼고 순리를 따르는 것. 마음챙김에서 말하는 ‘놓아버림’과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오쇼, 니체, 쇼펜하우어 등 많은 사상가들이 노자의 영향을 받았다.

이분법을 넘어서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완성한다(2장)”

“불운이여, 행운이 너에게 의존한다. 행운이여, 불운이 네 안에 숨어 있다(58장)”

세상을 절대적인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습관을 내려놓으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무언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으려는 태도는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삶의 태도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죄악시하며 공격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시선이다.


낮은 곳으로

“어찌하여 바다는 모든 개울의 왕인가? 모든 개울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백성 위에 서려는 자는 그들 아래에서 말해야 하고, 이끌고자 하는 자는 그들 뒤를 따라야 한다.”(66장)

겸손은 단지 미덕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 그 자체임을 노자는 알려준다.


내 삶을 비춰보는 순간

책을 읽다 보니 역시 자연스레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때때로 너무 서둘렀고, 너무 앞서 있었고, 너무 많이 개입했다.

무위는 커녕 인위의 극치였다 --;;; 특히 아들에게……--;;;

잘못될까 봐, 위험할까 봐, 남보다 부족할까 봐…

노자는 말한다. “스스로 도에 이르러야 한다.”

누군가 대신 걸어줄 수 있는 길은 없다. 나도 그렇고 아들도 그렇다.

도덕경은 내게 다시 상기시킨다.

힘을 빼고, 기다리고, 흐름에 몸을 맡길 것.

삶의 문을 억지로 열지 말고, 스스로 열릴 때까지 숨을 고를 것.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순간, 마음이 앞서 달려가는 순간, 아이의 시행착오 앞에서 괜히 답답해지는 순간—그때마다 나는 노자의 문장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하늘의 길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고, 늘 친절함으로 흐른다.”(79장)

켄 리우가 위안을 얻기 위해 곱씹어 읽는다는 이 구절에, 나도 조용히 마음을 기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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