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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은, 나였다
곽세라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2월
평점 :
l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

“지름 21센티미터, 4kg의 초거대 종양, 사망 확률
80%.
술,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고 자연 식물식을 하던 웰빙 피트니스 전문가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호주에서 홀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하며 보낸 1000일간의 이야기”
출판사의 책 소개를 읽고, 걷잡을 수 없는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자연 식물식에 명상과 요가를 하는 사람이
말기 암이라고?
사실 정말 그런 분들이 있다. 건강한 것 잘 드시고 운동 꼬박꼬박 하시는데 암에 걸리신 분들
(사실 나는 술과 가공식품을 퍼먹었기 때문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런 분들을 보면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저자는 심지어 명상과 요가의 본고장
인도에서 제대로 마음을 챙겨준 사람이다.
사실 암에 걸리는 건 그냥 교통사고와 같은 것일 뿐, 이유는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자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저자는 말한다.
구도하듯 수행했던 요가와 채식과 명상과 호흡법은 다 농담이었나?
이것은 웰빙의 배신이다.
바른 생활의 배신이다.
마음 챙김의 배신이다(28쪽)
어차피 초거대 종양에 먹혀 버릴 간이니 밤새 바닷가 바에서 데킬라를 마시고 춤을 췄을 것이다.
...... 제길, 이젠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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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피 관리를 받으려고 기다리던 중 이 책을 읽다가 울어버렸다.
다행히 꺼이꺼이 통곡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우니까 콧물이 너무 나와서 훌쩍거려서 안쪽에서 관리를 하시던 원장님을 불안하게 했다.
(샵의 공기가 안 좋아서 비염이 도졌나 걱정하셨다고
한다 --;;;)
(마침 이 책에서 저자가 처음으로 건넨 말은
"당신이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였다. 저자의 바램?!대로 나는 눈물이 많은 독자였다)
이 책을 읽고 깊이 공감하고, 저자의 기막힌 비유와 절망적인 상황에서 길어올린 유머에 수도 없이 감탄했지만, 리뷰를 쓰기는 쉽지 않았다.
저자의 표현이 너무 재치 있고 기발해서, 때로는 너무 가슴을 울려서 내 언어로 바꾸어 설명할
수가 없었다.
모든 문장이 너무도 귀해서 그냥 책을 다 옮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자는 퇴원 후 '용기와
체리파이 클럽'이라는 이름의 말기 암 생존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그들을 보고 동질감과 함께 안도감을 느낀다.
아, 내 부족을 찾았구나! 나는
모공 속까지 안심했다. 그들은 나와 같은 부류였다. 여기저기
시간 속에 흩어져 있던 외톨이들. 그들이 달빛 아래 모여 있다(144쪽)
사람들은 딱 따뜻할 정도로만 박수쳤다. 찻물 같은 온도의 환영이었다(145쪽)
강에 사는 수달들이 밤에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서로 손을 꼭 잡고 자는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이들은 수달처럼 함께 밤을 견디기 위해 모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한 명씩 거기 있는 수달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그들은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살아 꽃 피고 있었다(148쪽)
삶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풍경들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지만, 결국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역시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내가 생을 마치게 되었을 때 가장 미련이 남는다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글을 많이 쓰지 못한 것, 책을 번역하지 못한 것,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이런 답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실제로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미련이 남는 건 딱 하나였다. 남편.
'이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이 사람과 좀더 함께 있고 싶어.'하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오랫 동안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나의 성취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사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중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걱정하고 마음 아파해 주신 연로하신 부모님, 아들, 형제들과 친구들...그리고 새로 알게 된 친구들..........병으로 인해 나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 손을 꼭 잡고 아름답게 살아 꽃 피고 있기를...
암을 경험하신 분들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주변에 암을 경험하고 있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으신 분들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물론 암과 전혀 관계가 없는 분들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얻은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통찰을 담은 반짝이는 언어들과 만날 수 있다.
이보다 더 절망적일 수 없는 순간에 희망의 반짝임을 놓치지 않고 아름다운 웃음을 길어오는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가.
자신의 절망을 공유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자는 말한다.
오로지 '살아있음'에 집중하면 보낸 한 시절이
영혼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고.
우리는 human being이지 human
doing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