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조경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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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 *



소설은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단편소설은.


항상 많은 질문이 떠오르곤 하는데,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왜 뜬금없이 저런 행동을 하지? 작가는 대체 뭘 말하려는 거지? 애시당초 이 소설은 왜 쓴거지? 나의 일천한 지식으로는 좀처럼 파악되지 않는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들로 가득찬 단편소설의 세계. 가능하다면 작가님을 붙잡고 하나하나 물어보고 싶은 심정.


요즘 나온 소설이 궁금하긴 한데, 나와 같은 이유로 단편소설에 잘 손이 가지 않는 독자가 있다면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추천한다. 이 작품집에는 선정된 소설 뿐 아니라 작가노트에 평론가 리뷰, 심사평까지 자세히 실려 있어 뭔가 해답이 있는 문제집을 푸는 듯한 느낌(소설은 문제집이 아니지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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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27개 문예지에 발표된 165편의 소설을 심사하여 조경란의 <그들>(대상 수상작) 외에 신용목의 <양치기들의 협동조합>, 조해진의 <내일의 송이에게>, 반수연의 <조각들>, 안보윤의 <그날의 정모>, 강태식의 <그래도 이 밤은>, 이승은의 <조각들>의 총 일곱 편이 올해의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전반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실과 슬픔이 짙게 배어있어 묵직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갔지만, 개인적으로는 조해진의 <내일의 송이에게>, 안보윤의 <그날의 정모>를 인상 깊게 읽었다. (가장 알쏭달쏭했던 소설은 신용목의 <양치기들의 협동조합>)


조해진 <내일의 송이에게>


조해진의 <내일의 송이에게>는 세월호 참사 후 살아남은 자의 슬픔, 미안함, 죄책감과 같은 감정들을 그리는 작품이다. '안산'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도 처음에는 이 작품이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주인공인 송이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던 복지관에서 나란히 같이 앉아 공부를 하던 그애, 아끼는 스티커를 그녀의 손톱에 붙여주던 그애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방황하기 시작한다. 열여섯 살 때부터 무능력한 부모를 책임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노력하던 송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에서 나와 마트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그녀를 지배하는 것은 미안한 마음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분해되지 않는 결정(結晶)으로 가슴 밑바닥을 향해 끝없이 추락해 가는 것(126쪽), 즉 죄책감이다. 그녀는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 더이상 부모를 돌보지 못하고 뛰쳐나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같이 이중의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런 그녀는 어느날 복지관에서 함께 공부했던 장훈을 십이 년 만에 우연히 만나게 된다. 가난의 대물림으로 신산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 평범한 세상과 단절된 터널 저편에 고립되어 있던 송이에게 있어 장훈은 그녀가 미래로 한 걸음 내딛게 하는 중요한 존재가 된다.



"차를 소유해본 적 없고 운전면허증조차 취득하지 않은 그녀에게 인도가 없는 터널은 더이상의 진입을 저지하는 설치물이라 해도 무방했다. 몸이 붕 떠올라 터널과 수평이 된다면 터널은 아주 거대한 두 개의 검은 구멍처럼 보일 터였다... 저 너머에 안산의 또다른 동네가 있다는 것이,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한다는 것이 모두 거짓말 같다고(125쪽)"


"그녀는 장훈의 스쿠터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는 상상을 했다...한참을 달리니 어둠의 농도가 옅어지면서 문득 눈이 부셨고 순식간에 터널은 끝나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곳에 인간의 땅과 신전, 죽음의 표상이 있는 또다른 동네가 있다는 것을, 부서지거나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형대로, 그렇게.....생각하며, 송이는 장훈에게 한발 한발 다가가기 시작했다."

죄책감에 발목이 잡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송이. 우리의 송이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 평범한 일상이 있는 터널 저편으로 나아가기를. 내일의 송이는 어제의 송이와는 다르기를. 내일의 그들은 어제의 상실과 아픔을 딛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래본다.




덧) 1. <내일의 송이>는 <씨네21> 기자들이 영상화를 꿈꾸는 한국 소설 중 하나로 꼽았다.


2. 강태식의 <그래도 이 밤은>을 읽으면서 "이거 혹시 이런 반전이 있는 거 아니야?"라고 의심하면서 "내가 오버하나?" 했는데 심사위원들도 같은 의심을 하는 장면이 나와서 나름 뿌듯했다 ㅎ (아...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구나...라고...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이런 재미가 있다!)


3. 안보윤의 <그날의 정모>. 가장 가슴아프고 강렬했던 소설.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정모에게 가해지는 혐오의 시선과 폭력들. 마지막에 누나를 지키려는 정모의 몸부림에 가슴이 찡했다.


우리 시대의 슬픔과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자.

그래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


이 소설집의 작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러한 슬픔과 상실감을 직시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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