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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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를 통해 읽게 된 두 번째 책이다. 군 복무 때 도서관에서 봐둔 책이지만 우선순위가 밀려 지금까지 읽지 못 했던 책이기도 하다.

 

여느 책처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이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팔리카리(담대한 남자, 용감하고 잘생긴 청년, 영웅)의 매력을 가진 조르바라는 인물을 소개하려는 작품이고, 이를 위해 스토리를 마련한 듯한 작품이다.

 

...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 (p. 397)

 

매 순간에 온전히 열의를 다 할 수 있는 것이 조르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인 두목은 정반대의 성격인 샌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실제로 작가가 조르바를 만나 느낀 부러움과 깨달음(책이 아닌 실제 경험을 통한 배움), 조르바에 대한 호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작품에는 카잔차키스 본인의 경험, 사상이 많이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례로, 뒤의 옮긴이의 말을 보면 카잔차키스는 고향 크레타가 터키의 지배 아래 고통받는 것을 보고 조국 해방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러한 지배구조를 없애는 투쟁을 계획한다. 조르바 역시 과거 군인 시절에 조국 그리스를 위해 적국을 대상으로 살인과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불가리아 마을에서 자신 때문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보고 애국의 명목으로 저지른 자신의 악행을 돌아보고 뉘우친다. 그리고는 조국만을 위하지 않는, 범국가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pp. 329 ~ 334)

 

또한 종교에 대해 회의적, 풍자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카잔차키스가 태어났을 때 늙은 산파가 카잔차키스는 주교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이를 계기로 카잔차키스는 미래의 주교라는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고 있었다.

 

… 내게 삶은 아직도 아름답다,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아직도 아름답다

(p. 460 - 옮긴이의 말 중)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난 성자 <동굴의 마카리오스>가 얻은 자아와 삶을 부정하는 깨달음에 수긍하지 못 했다. 또한, 고행이 아니라 여자와의 동침으로 얻은 쾌락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다는 파계승의 깨달음에도 수긍하지 못 한다.

 

카잔차키스에게는 극히 다른 두 깨달음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깨달음이 필요했다.

 

... 누가 이 여자를 데려갔을까요? 행실이 참한 여자라면 사람들이 <하느님이 데려가셨다>라고 할 거고, 행실이 걸레 같은 여자라면 사람들이 <악마가 데려갔다>고 할 겁니다. ... 하느님이나 악마는 하나고, 똑같은 거에요! (p. 345)

 

조르바는 악마와 하느님을 모두 사람의 인식이 만들어낸 관념이라는 동의어처럼 대한다. 카잔차키스가 얻은 종교적 깨달음이 이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르바를 통해 보았을 때 기존의 속물적인 (화재 후 복구를 위해 한몫 잡으려는 수도원), 사람의 목적을 위해성스러움을 빌려주는 종교는 그 깨달음에 없는 듯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시적인 장면묘사와 의식의 흐름, 그리고 이를 통해 문단이 자연스레 전개되는 것이다.

 

...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 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했다 ... (p. 1)

 

위처럼 바깥 날씨를 묘사하며 자연스레 카페 안으로 장면을 이동시킨 것도 한 예가 된다. 그리고 두목이 자주 바닷가나 바위에 앉아 사색을 즐기는데 그 때도 종종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

 

스토리가 아닌 인물이 중심이라 여겨진 작품이라 그런지 흡인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르바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알게 된 점으로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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