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실하심(출발점, )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우리의 믿음(도착점, )으로 귀결되다.

. 누군가에게는 할라크(가라)가 정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샤칸(거주하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슈브(돌아가라)가 정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자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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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히브리어로 영광은 카보드( )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본래 뜻은 무겁다 혹은 중량감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번쩍이는 조명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무게감이 바로 영광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사례는 바로 피스토스()와 피스티스()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피스티스를 가지면, 그것은 곧 믿음이나 신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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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레위기 23:10-14은 보리 수확의 초실절로, 칠칠절은 밀 수확의 초실절로 볼 수 있다.

이 절기는 성전에서 공식적으로 시행되는 제의였지만, 그 의미는 일상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첫 열매를 드리는 이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삶과 생계가 하나님의 은혜 위에 놓여 있음을 확인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초실절은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특히 키부츠(Kibbutz)와 모샤브(Moshav)와 같은 농업 공동체에서는 샤부오트와 결합하여 초실절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전체를 향한 생명의 첫 수확이었다. 그분의 부활로 인해 죽음의 계절은 끝나고, 새로운 생명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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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 기간에 일어났으며, 요한복음은 그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이 잡히던 시각과 의도적으로 연결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떡과 잔을 들어 그것을 자신의 몸과 피로 해석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 무교절의 의미를 성도의 삶으로 확장했다. 그는 먼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라고 선언함으로써, 구원의 근거를 분명히 한다. 그리고 그 선언 위에서, 누룩을 죄와 부패에 비유하며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살라(고전 5:8)라고 권면한다. 출애굽의 고난을 기억하라는 요청은 이제, 죄의 종 되었던 옛 삶을 기억하고 거기서 떠나라는 윤리적 요청으로 이어진다.

절기의 시간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의 신앙 안에서 다시 열리고, 성도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구체화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기억된 구원이 삶의 형태로 드러나는 자리, 곧 구속의 은혜가 일상의 방향을 형성하는 시간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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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절기의 형태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제사가 사라지면서 그들은 더 이상 제의 중심의 절기를 지킬 수 없었지만, 이스라엘은 절기를 포기하지 않았

신약과 기독교의 관점에서 절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절기를 더 이상 특정한 날이나 제도로만 이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는 양을 잡는 의식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유월절의 초점은 성전 중심 제의에서 가정 중심의 세데르 만찬으로 이동했다.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가정에서 식탁을 차리고 유월절 음식을 나누며 출애굽 사건을 기념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유월절은 민족의 정체성과 믿음을 이어 주는 중요한 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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