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면, 초기 기독교 예배는 신자들의 가정교회 형태의 단순한 모임이었으며 예배 형식 또한 격식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집회였습니다
예배는 성경 낭독, 설교, 공동 기도, 봉헌, 감사 기도(Consecrare)로 진행되고, 그 후에 성찬을 함께 나누고, 함께 식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스티누스의 글이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 예배의 기본 틀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예배의 순서는 2세기 당시 기독교회 예배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상이나 신전은 없었으나 기독교회는 처음부터 책을 가진 종교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믿은 바에 따라 단순한 형식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2세기 교회가 조직화되고 제도화되어 감에 따라 예배를 위한 예전이 생겨나게 되고, 점진적 변화 과정을 거쳐 차츰 의식화(儀式化)되기 시작합니다.
초기 예배에서는 불신자들이나 이교도들의 참석이 허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로 박해 이후 그리스도인들만 회집하게 되었고 이 일로 기독교도들은 비밀 결사체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유대교와 뚜렷이 구분되는 그리스도교적 예배와 식탁 교제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
신자의 가정 생활의 중요성
셋째, 한 지역에 몇 개의 가정교회가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은 사도 시대에 일종의 당파적 경향이 있었음을 암시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사회적 신분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
교회가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어떻게 신앙과 공동체를 지켜 왔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은 개인의 가정집에서 회집했습니다
첫째, 그들에게 있어서 시급한 과제는 제자 삼는 일, 곧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전하는 것이었지 건물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
둘째, 가정집은 사적 공간이었으므로 회집자들의 안전이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당시 기독교는 불법적 종교였으므로 합법적으로 재산 취득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
오순절 성령 강림은 지상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제국의 변방에서 시작된 소수의 예수 운동이 불과 30여 년 만에 로마제국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한 것, 초기 기독교가 급성장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예루살렘에 신약시대 최초의 교회가 설립된(30년경) 이래 약 2백 년간 초기 교회는 독립된 집회소로서 교회당 건물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