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티처는 퀄런이 보이는 것보다 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퀼런이 마흔다섯쯤 됐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그는 열 살은 더 먹어 보 였다. 피스 티처가 퀄런에게 동정을 느낀 것은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외모, 아니 어쩌면 불안한 듯 텅 빈 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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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폭풍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2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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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았을지 모르나 초면인 작가 이렌 네미롭스키의 #프랑스픙조곡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모티브로 쓰여졌다는 이 작품은 2차 대전 당시 파리가 독일군에게 함락된 그 시점을 시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간헐적인 공습은 있어도 전쟁은 먼 곳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던 파리의 시민들은 가까워지는 포탄 소리에 당황합니다. 베토벤 교향곡의 도입부처럼 시시각각 큰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적의 진군 소식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부유한 페리캉 집안의 사람들, 유명한 작가, 골동품 수집가 그리고 은행에서 근무하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력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미쇼부부와 입대힌 그들의 아들 그리고 페리캉 집안의 하인들과 피난 길에 만나는 어려운 사람들. 밀려드는 피난민들에 당황한 시골 사람들. 그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독일군은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방을 구하거나 식료품을 사는 건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집 한채를 이고 갈 것 같았던 페리캉부인은 그 와중에 유산을 물려 줄 시아버지를 어느 시골집에 놔둔채 피난길을 서두릅니다. 차에 자리가 없어서 은행장을 따라 갈 수 없었던 미쇼부부는 중간에 파리로 돌아옵니다.
전쟁이 끝나고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이 파리로 돌아오고 마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참전해서 전사한 군인들도 많지만 파리를 떠났던 사람들 중에는 페리캉 집안의 첫째아들 필리프처럼 타지에서 어이없이 사망하거나 이제 다시 파리의 삶을 만끽하러 나섰다가 역시 어이없이 사고로 사망한 샤를 라줄레도 있습니다.
후세를 살고 있는 독자인 저는 그 전쟁의 끝이 1941년이 아닌 걸 알지만 작품 속의 파리 시민들에게 당시는 일단 전쟁이 끝나고 잠시나마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아니았을까 싶습니다.
폭풍 속을 헤매는 것 같은 혼란한 피난의
와중에 사람들은 여과없이 살아남고자 하는 본성을
드러냅니다.
작품자체로 눈을 떼지 못하게 흥미진진합니다. 특히나 순간 순간 그 계절이 주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각인시킬만큼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아서 전쟁이라는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그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릉 마주하게 되는 재미도 굉장했습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를제공받았습니다.

"뭐야, 완전히 어린애잖아!"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묵시록의 광경을, 기괴하게 생긴 끔찍한 괴물 같은 것 을 보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91

그 각각의 냄새는 땅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먹을 수 있는 작은 생명체들을 드러냈다. 풍뎅이, 들쥐, 귀뚜라미, 그리고 목소리에 맑은 눈물을 가득 담고 있 는 것 같은 작은 두꺼비. 은빛 털로 뒤덮인 분홍색 나팔 이나 메꽃처럼 뽀족하고 안쪽으로 살짝 말린 고양이의 기 다란 두 귀가 쫑긋 세워졌다. 알베르는 너무나 가늘고 신비 스러운, 하지만 자신에게만은 너무나 분명하게 들리는 암 흑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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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백탄 타는 데는
연기가 퍼벌석 나건만
우리네 가슴 타는 덴
연기도 재도 없네

<사발가> - P39

저우수런은 말하자면 공자에 정나미가 떨어져 일본으로 온 것인데, 거기서 다시 공자에게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니 그 충 격이 만만치 않았다. 하다못해 그는 일본의 학자들 중에서 한 문으로 논문을 쓰는 이가 있어 또 한 번 놀란다. 대체 그런 식 으로 글을 써서 누구더러 읽으라 하는 것인지 청년 저우수런으 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그는 전통‘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4,000년의 유구한 전통인 들 그것이 근대화를 방해하는 한 오로지 물리쳐야 할 낡은 폐 습에 지나지 않았다. 이리 터지고 저리 찢기는 제 처절한 꼴을 외면하는 아Q식 정신 승리법으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 P42

홍명희는 다달이 부쳐주는 돈이 넉넉해서 원하는 책을 실 컷 사 볼 수 있었다. 일본 작가로는 나쓰메 소세키를 아주 좋아 하여 ‘중배자‘ 라는 소리마저 들었다. 최남선은 그 시절 홍명희 가 나쓰메 소세키라면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홍명희 는 그밖에도 시마자키 도손, 다야마 가타이, 도쿠토미 로카 등 주로 자연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으며,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침통하고 사색적인 부분이 스스로 기질에 잘 맞는다 고 생각했다. - P35

그에게 애초 선진 문 물을 많이 보고 배우겠다는 의지 따위는 별로 없었다. 그보다는 과거 조선통신사 시절의 위엄일랑 잃지 않겠다는 자세를 고집했는데, 이 때문에 정작 일본에 가서도 대개 "저들이 두 번 세 번 와서 요청하면 괄시하는 모양으로 있을 수도 없어서 마 지못하여 응할 뿐"이었다. - P46

서학 (천주학)이든 실학이든 조선 500년을 지해온 유교적 질서를 흔드는 모든 이념은 사악하다, 당연히 물리쳐야 한다고 했다. - P49

"여러분 중에는 양반의 아들두 있을 테구 중인의 아들두 있 을 테구 평민의 아들두 있을 텐데, 지금 세상 형편이 자꾸 개척 하는 시대야. 상중하 차별이 없는 시대야. 누구든 공부만 잘해 - P53

서 우등한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즉 양반이지 별게 아니란 말
이야..."
훗날 사람들에게야 외려 고리타분한 말이 겠지만, 그대 거기 한강변에 모여 서서 귀를 빌려주던 청년들에겐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박영효가 참 난사람이었다. - P54

소재는 물론 조형과 색채에서 드러나는 그 대답 한 발상은 충격적이었다. 고흐, 세잔, 모네, 드가, 르누아르, 피 사로, 클림트와 같은 인상파 대가들은 하나같이 우키요에 에 홀 려 서구 미술사에 따로 ‘자포니즘 japonisme‘의 시대를 열게 된다. - P66

정확히는 1868년 7월 17일의 일 로 아직은 게이오의 연호를 쓰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는 단 순히 이름만 바꾸는 정도가 아닌, 말 그대로 환골탈태였다. - P67

주군을 위해 한꺼번에 배를 가른 주신구 라 47인의 의리가 막부 시대 사무라이 정신을 대표한다면, ‘전 향‘은 일본 근대 사상의 핵심이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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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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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 섭이 구더기 들끓는 무덤 같은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 아 침부터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해롱거린다고 봤다면, 김기진은 눈을 뜨고 있어도 죄 줄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 P169

봄도 성북동의 봄은 고스란히 순동양적, 순조선적 봄이어서 좋았다. 꼴같잖은 양옥을 지어놓고 어울리지도 않는 사쿠라를 심어놓은 풍경하고는 격이 아예 달랐다!
상허는 거기에 집을 지었다. - P222

상허는 성곽을 따라 걸으며 성벽에 뿌리박고 자란 소나무의 솔씨를 생각하고, 성을 지을 때 돌 개수만큼이나 무수히 동원 되었을 백성들의 공력을 생각한다. - P226

보들레르의 파리와 베냐민의 베를린에서 백화점은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 는 산책자들의 발걸음조차 상품 판매에 이용했다. 서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식민지의 산책자들은 그걸 더 잘 알기 때 문에 더더욱 백화점을 찾았을지 모른다. - P273

그러나 외부란 그들의 노력으로 갖고 말고 할 성질의 것 이 아니었다. 조선은 철저히 식민지였고, 식민지에서는 오직
‘내지‘만이 유일한 외부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머릿속에서 희 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일 때, 이상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날개야 돋아라!"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 P274

소심을 같이 나가는 역량도 역량이지만, 정작 책으로 묶여 나온 490여 쪽의 방대한 소설을 읽고 나자. 눈급만치도 ‘뻐터‘냄새나 ‘사시미 냄새가 나지 않는 데 놀랐다. 그러면서 "아하! 태원은 순수한 조선학파다! 이렇게 외치게 된다.
그를 감탄하게 만든 것은 박태원의 ‘말‘이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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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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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 국문학의 동인지 시대를 연 작가들은 애송이 소년• 청년들이었 다. 김동인과 주요한이 20세에 「창조」를 창간했고, 나머지 동 인들도 대개 다 이십 대 중반을 넘지 않았다. 평균 수명이 짧은 시대였음을 감안해도 새롭게 문학사의 기둥을 세워야 하는 막 중한 임무에 비겨선 아무래도 연륜이 짧은 게 사실이었다. 그 래도 서울의 ‘소년 문학자‘들은 못 들은 최 귀를 막았고, 폐기 하나만은 당당했다. - P127

옛것은 쇠하고, 시대는 변한다.
새 생명은 이 폐허에서 피어난다.
Das Alte stürzt, es ändert sich die Zeit,
Und neues Leben blüht aus den Ruinen. - P131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성배 를 깨뜨린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죽은 신부의 이야기로 시작되 - P136

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속 그 마비된 식민 도시 더블린이 서 울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을지 모른다. - P137

신여성의 범위를 아무리 넓게 잡아도 실제로 그들이 전체 인 구 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들을 둘러싼 ‘담론‘은 끊이지 않았다. 다른 어떤 화제 이상으로 파급력도 강했다. 한편에서는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멸시의 시선을 던졌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늘 이 런 상반된 시선이 교차했다. 기본적으로는 ‘관음 8의 그것이 었다. 많은 신여성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오직 추문의 주 인공으로 함부로 소비되는 일이 흔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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