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백탄 타는 데는
연기가 퍼벌석 나건만
우리네 가슴 타는 덴
연기도 재도 없네

<사발가> - P39

저우수런은 말하자면 공자에 정나미가 떨어져 일본으로 온 것인데, 거기서 다시 공자에게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니 그 충 격이 만만치 않았다. 하다못해 그는 일본의 학자들 중에서 한 문으로 논문을 쓰는 이가 있어 또 한 번 놀란다. 대체 그런 식 으로 글을 써서 누구더러 읽으라 하는 것인지 청년 저우수런으 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그는 전통‘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4,000년의 유구한 전통인 들 그것이 근대화를 방해하는 한 오로지 물리쳐야 할 낡은 폐 습에 지나지 않았다. 이리 터지고 저리 찢기는 제 처절한 꼴을 외면하는 아Q식 정신 승리법으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 P42

홍명희는 다달이 부쳐주는 돈이 넉넉해서 원하는 책을 실 컷 사 볼 수 있었다. 일본 작가로는 나쓰메 소세키를 아주 좋아 하여 ‘중배자‘ 라는 소리마저 들었다. 최남선은 그 시절 홍명희 가 나쓰메 소세키라면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홍명희 는 그밖에도 시마자키 도손, 다야마 가타이, 도쿠토미 로카 등 주로 자연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으며,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침통하고 사색적인 부분이 스스로 기질에 잘 맞는다 고 생각했다. - P35

그에게 애초 선진 문 물을 많이 보고 배우겠다는 의지 따위는 별로 없었다. 그보다는 과거 조선통신사 시절의 위엄일랑 잃지 않겠다는 자세를 고집했는데, 이 때문에 정작 일본에 가서도 대개 "저들이 두 번 세 번 와서 요청하면 괄시하는 모양으로 있을 수도 없어서 마 지못하여 응할 뿐"이었다. - P46

서학 (천주학)이든 실학이든 조선 500년을 지해온 유교적 질서를 흔드는 모든 이념은 사악하다, 당연히 물리쳐야 한다고 했다. - P49

"여러분 중에는 양반의 아들두 있을 테구 중인의 아들두 있 을 테구 평민의 아들두 있을 텐데, 지금 세상 형편이 자꾸 개척 하는 시대야. 상중하 차별이 없는 시대야. 누구든 공부만 잘해 - P53

서 우등한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즉 양반이지 별게 아니란 말
이야..."
훗날 사람들에게야 외려 고리타분한 말이 겠지만, 그대 거기 한강변에 모여 서서 귀를 빌려주던 청년들에겐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박영효가 참 난사람이었다. - P54

소재는 물론 조형과 색채에서 드러나는 그 대답 한 발상은 충격적이었다. 고흐, 세잔, 모네, 드가, 르누아르, 피 사로, 클림트와 같은 인상파 대가들은 하나같이 우키요에 에 홀 려 서구 미술사에 따로 ‘자포니즘 japonisme‘의 시대를 열게 된다. - P66

정확히는 1868년 7월 17일의 일 로 아직은 게이오의 연호를 쓰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는 단 순히 이름만 바꾸는 정도가 아닌, 말 그대로 환골탈태였다. - P67

주군을 위해 한꺼번에 배를 가른 주신구 라 47인의 의리가 막부 시대 사무라이 정신을 대표한다면, ‘전 향‘은 일본 근대 사상의 핵심이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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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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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 섭이 구더기 들끓는 무덤 같은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 아 침부터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해롱거린다고 봤다면, 김기진은 눈을 뜨고 있어도 죄 줄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 P169

봄도 성북동의 봄은 고스란히 순동양적, 순조선적 봄이어서 좋았다. 꼴같잖은 양옥을 지어놓고 어울리지도 않는 사쿠라를 심어놓은 풍경하고는 격이 아예 달랐다!
상허는 거기에 집을 지었다. - P222

상허는 성곽을 따라 걸으며 성벽에 뿌리박고 자란 소나무의 솔씨를 생각하고, 성을 지을 때 돌 개수만큼이나 무수히 동원 되었을 백성들의 공력을 생각한다. - P226

보들레르의 파리와 베냐민의 베를린에서 백화점은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 는 산책자들의 발걸음조차 상품 판매에 이용했다. 서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식민지의 산책자들은 그걸 더 잘 알기 때 문에 더더욱 백화점을 찾았을지 모른다. - P273

그러나 외부란 그들의 노력으로 갖고 말고 할 성질의 것 이 아니었다. 조선은 철저히 식민지였고, 식민지에서는 오직
‘내지‘만이 유일한 외부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머릿속에서 희 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일 때, 이상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날개야 돋아라!"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 P274

소심을 같이 나가는 역량도 역량이지만, 정작 책으로 묶여 나온 490여 쪽의 방대한 소설을 읽고 나자. 눈급만치도 ‘뻐터‘냄새나 ‘사시미 냄새가 나지 않는 데 놀랐다. 그러면서 "아하! 태원은 순수한 조선학파다! 이렇게 외치게 된다.
그를 감탄하게 만든 것은 박태원의 ‘말‘이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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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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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 국문학의 동인지 시대를 연 작가들은 애송이 소년• 청년들이었 다. 김동인과 주요한이 20세에 「창조」를 창간했고, 나머지 동 인들도 대개 다 이십 대 중반을 넘지 않았다. 평균 수명이 짧은 시대였음을 감안해도 새롭게 문학사의 기둥을 세워야 하는 막 중한 임무에 비겨선 아무래도 연륜이 짧은 게 사실이었다. 그 래도 서울의 ‘소년 문학자‘들은 못 들은 최 귀를 막았고, 폐기 하나만은 당당했다. - P127

옛것은 쇠하고, 시대는 변한다.
새 생명은 이 폐허에서 피어난다.
Das Alte stürzt, es ändert sich die Zeit,
Und neues Leben blüht aus den Ruinen. - P131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성배 를 깨뜨린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죽은 신부의 이야기로 시작되 - P136

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속 그 마비된 식민 도시 더블린이 서 울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을지 모른다. - P137

신여성의 범위를 아무리 넓게 잡아도 실제로 그들이 전체 인 구 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들을 둘러싼 ‘담론‘은 끊이지 않았다. 다른 어떤 화제 이상으로 파급력도 강했다. 한편에서는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멸시의 시선을 던졌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늘 이 런 상반된 시선이 교차했다. 기본적으로는 ‘관음 8의 그것이 었다. 많은 신여성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오직 추문의 주 인공으로 함부로 소비되는 일이 흔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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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후쿠나가 다케히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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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2차 대전 후 병으로 요양원에서 생활했던 ’나‘의 이야기와 그 곳에서 알게된 ’시오미 시게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등단한 시인인 '나'의 병실 동료들은 꽤 다양한 직업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병실에서도 일을 해야되어 사부작 사부작 작업을 계속하는 가쿠씨,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심통을 부리는 대학생 료군 그리고 어딘가 초월한듯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워대는 시오미. 그들의 생활은 고여있는 듯 고여있지 않은 시간 속에서 조용히 흘러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시오미가 수술을 받겠다고 합니다. 그가 바란 수술은 당시의 의료기술로 보나 자신의 상태로 보나 무리한 수술이었지만 의지를 굽히지 않고 관철시킨 끝에 수술은 진행됐고 끝내 시오미는 수술중에 사망했습니다. 수술전 그가 ’나‘에게 부탁한 노트는 결국 화자인 '내'가 맡게 됩니다.
노트 두 권에는 열여덟살과 스물네살의 시오미의 고뇌가 그대로 담겨있었습니다.

열 여덟살의 시오미는 후배 후지키에 대한 사랑은 누가 봐도 알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만큼 스스로의 고뇌도 깊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그 사랑의 대상이었던 후지키에게도 버거웠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시오미의 속도 모르고 그들이 훈련하러 간 조용한 어촌마을의 풍경은 더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스물 네 살의 시오미는 고교시절의 후배 후지키의 여동생 지에코로 온통 가득차 있었다고 주장합니다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고독'과 고뇌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제 징집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과 주변 친구들의 이른 죽음이 시오미의 마음엔 커다란 구멍처럼 남았습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더욱더 그를 더욱더 ’이상적인 영역, 생각의 영역에 몰두하도록 했던 것 아닐까 합니다.

그의 선택은 ‘중간’이 없이 ‘극과 극’으로 치닫는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곳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마치 운명처럼 ‘고독’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 혹은 처지가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남겨진(혹은 살아남은) '나'는 ‘지에코’에게 노트를 전하지 못하지만, 시오미가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거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 지지 못하고 빗겨가는 것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어긋남의 결과가 이렇듯 안타깝지만 수긍이 가는 이야기는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생각과 치열한 고민 만큼 아름다운 문장들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도서를제공받았습니다

#후쿠나카다케히코#박성민옮김#시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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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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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서평단

#가제본도서를제공받았습니다


#위화의 장편소설 #원청은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싼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시대의 이야기, 어느 땅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온 몸애 눈을 뒤집어쓰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잔뜩 자란 남자, 수양버들 같은 겸손함과 들판 같은 과묵함을 가진 남자였다.(p.11)

이 남자 린샹푸가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시진에 나타난 것은 사람들이 기억하기로는 17년전 지독한 한파가 몰아쳤을 때였고, 평생의 우정을 나누게 되는 천용량이 기억하는 건 폭풍우로 마을이 초토화 됐을 때  홀연히 “재난을 겪은 사람의 절망스러운 표정이 아니라 흐뭇한 짓고(p.12)” 나타난 순간이었습니다.
‘원청’을 찾는 그는 천용량뿐 아니라 딸 아이에게 동냥 젖을 먹이면서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그 곳이 원청인지.
그러나 그가 묻는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그곳은 #원청이 아니라 시진이라는 답입니다.

곳곳에 작가가 숨겨둔 이야기들이 있어 읽는 재미가 극대화 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이 긴 여정을 함께하듯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허삼관매혈기와는  달리 웃음 기를 걷어낸 이 이야기는 그에 못지 않은 흡입력이 있습니다.

북쪽의 이야기, 남쪽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원청의 이야기 입니다. 
다 읽고 나서 이 대작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도 남았지만 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린샹푸 인생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 가슴 뻐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풍광과 관습과 풍습들이 담담한 문장으로 린샹푸의 우직한 걸음처럼 전개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너무 늦게 시작하여 마감 시간을 못 맞춘 건 아쉽습니다. 😅

#원청#위화#소설
#가제본서평단


천용량이 아침 햇살 속에서 본 사람은 재난에서 빠져 나온 사람이 아니라 기쁨에 젖은 아버지였다. - P101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도와주러 오다니, 제대로 살았나 보네요." - P132

벼와 목화, 유채꽃이 만발했던 논밭도 잡초만 무성하고, 한때는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정도로 맑았던 강물 역시 혼탁한 데다 비린내가 진동했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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