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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거리
아사노 이니오 지음, 이정헌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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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구의 추천의 받아서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인 "빛의 거리"를 샀어요.

빛의 거리, 어찌나 표지가 밝고 화사한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목에서도 빛의 따사로움의 느껴지지 않나요?

 

하지만 정작 책을 펼쳐보니 어둡고, 또 어두웠습니다.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달라 배신당한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빛이란 것이 따뜻할 뿐만 아니라 그 정도가 심해지면 사람을 죽일만큼 "뜨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빛은 분위기를 돋우어 주지만, 엄청난 빛을 받았을 때에는 그 빛 아래 많은 것들이 "노출"될 수 있어요.

 

가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거울을 볼 때가 있습니다.

집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얼굴의 잡티하며 어두칙칙한 피부톤들이 여실히 드러나서

아연실색했던 적이 있었는데

"빛의 거리"를 읽고 나서 기분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작가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과 더러운 마음들을 "빛의 거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듯해요.

며칠 전 기사를 읽어 보니 길을 걷던 남자가 '저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거리에 있던 다른 사람을 죽였다고 해요.

물론 그 남자는 정신분열증 증세가 있던 환자이기는 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역시 그 사람보다는 덜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만 마음에 균열이 생겨도 다스리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분출해버릴 수 있는

우리들은 그래서 자기 자신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할 듯 해요.

 

* 인상적인 구절 : 절망도, 희망도, 언젠가는 끝나게 돼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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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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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 책, 두툼하다. 441쪽. 이정도 두께라면 나에게는 '압박'일텐데

드라마의 힘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무려 도서관에 '예약'대출 시스템을 이용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은수가 말할 때 최강희 목소리가 들리고, 태오가 방긋 웃을 때 지현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드라마와 책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는 처음 느껴본다.

달콤하다고 했다. 이 도시가. 아니, 전혀. 달콤하지 않다.

은수. 오은수. 31~32살 여자. 그의 주변인들.

모두 평범한 듯 비범하고, 비범하듯 우리 일상 속에 폭 파묻혀 있는 사람들이다.

책을 읽는 그 순간들은 즐거웠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직업과 결혼, 인생에 대한 무거운 질문들이 아직도 아직도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그래서 별 2개이다. 책과 영상물의 싸움은 항상 영상물이 승리한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역시 그러하다.

시니컬하신 책 속 은수씨 말고 최강희로 분한 좀 더 달콤하시고 귀여우신 은수씨가 나는 더 좋다.

 

웃겨 죽는 줄 알았던 구절.

20쪽.

골목은 20대 초반의 아이들로 바글거렸다.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길쭉길쭉한 다리를 놀리는 기린 같은 여자애들 사이를 쪼그랑 할망구처럼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기린과 할망구의 이미지의 극단적 대조와 함께 있는 블랙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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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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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이현의 소설이다. 현재 그녀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가 SBS에서 방송되고 있고 최강희와 지현우의 상큼한 사랑이야기를 지켜보면서 정이현이 만들어놓은 세상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여러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나는 단편 소설 모음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각기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고 붕괴되는데 그 순간이 너무 짧아 단편소설 모음집은 다 읽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모두 읽었다. 깊이 몰입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지만 바람불면 휙 날아갈 일 없을 정도로 가볍지도 않다.

각기 공감할 만한 사건을 겪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평범하고 하잘 것 없는 일상이 파국으로 치닫는 순간의 침착한 울림.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 현재 20대 후반의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기억도 없고, 민주화의 거친 기억도 없다.

그저 고교 시절 즈음에 겪었을 IMF의 경제적 고난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현재 내 또래의 사람들은, 특히 나는 무거운 이념을 싫어하고 권위를 경멸하고 경제적 여유를 갈망한다.

평범한 일들은 수도 없이 일어난다. 우리들은 모두 평범하다. 우리의 삶을 역사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살아있고, 내가 살아있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인다.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나.

우리는 살짝 미쳐 있고, 스트레스 없는 하루는 없고, 술과 담배와 사랑에 기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다. 그런 평범하거나 비범한 여자들의 거짓말, 그것도 아주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책 안에서 자신의 역사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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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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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의 유행 컬러인 '포르투갈의 바다'색, 민트가 표지 색깔이다.

그 사람은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읽고 있었다. 그것은 에게 해 같은 에메랄드그린색이랄까 옅은 파랑이랄까, 아무튼 미묘한 색상의 책으로 제목은 '포르투갈의 바다'였다. 94쪽

책 표지의 그림들을 찬찬히 보면

어떤 거리(그녀가 7월 24일 거리라고 불렀던 그 거리)

얼굴 없는 여자-사랑에 실수할까봐 걱정하는 사유리와 메구미의 얼굴이 들어가겠지.

그리고 카페라는 글자-사토시를 만났던 카페

사토시와 함께 있자니, 특별한 시간을 지내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에나 흔히 있는 카페에서 홍차를 마시고 있을 뿐인데, 눈앞에 사토시란 남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벌써 몇 년이나, 아니 몇십 년이나 이 시간을 기다린 듯한 기분마저 든다.112쪽

 

이번 주 금요일, 7시 24분발 기차를 타고 도쿄로 간다는 문자를 보내자, 금방 답신이 왔다.146쪽.

(그녀는 7호차 기차를 타고 도쿄로 간다. 7과 24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다)

기억 속의 문에서 걸어 들어오고 있는 남자(아마도 사토시이겠지)

장미와 가시 (사유리는 고등학교 시절, 아키코와 사토시를 지켜보면서 늘 가시에 찔리는 듯 괴로웠을 것이다. 이제 사토시와 겨우 사귀게 되었는데 아키코가 이혼했다. 장미는 사토시 때문에 얻게 된 사유리 마음의 상처)

사토시는 숲에 가깝다(.......) 1년 선배고,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고, 늘 당당했고 친절했다. 다만 그 친절함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마치 숲 속에 아름다운 꽃이 있는가 하면 그 옆에 가시 돋친 넝쿨이 있듯, 부담 없이 다가간 우리들의 마음을 태연하게 짓밟았다. 112~113쪽

정말 표지 디자인이 좋다. 무성의하고 난삽한 것 같지만 의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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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사유리는 자신이 사는 동네와 리스본을 겹쳐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키코가 이혼해서 사토시가 자신을 떠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도쿄에 가기 위해 역으로 갈 때 비로소 모든 망상들은 깨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자신이 사는 동네를 바라보게 된다. 특별함을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평범 이하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일상에 안주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늘 떠나고 싶으면서도 누군가 모조리 준비해 주지 않으면 절대 여행도 떠나지 않는 이 여자. 일본 만화책에서 보던 "찐따" 같다. 여성, 남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자존감이 부족한 여자이다. 남의 기준에 비추어 멋진, 잘생긴, 인기많은 사람과 사귀거나 그러한 사람에게서 고백을 받게 되면 내가 그 만큼 값진 여자가 된다는 것인가?

하지만 이 여자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는 사유리가 자신과 똑같은 기준을 메구미에게서 발견하고는 '어, 이 여자, 사랑을 위해 노력하고 있군(만화에서는 흔히 '고군분투하고 있군.'하며 감동한다)' 하는 것과 같겠지.

 사유리나 메구미나 나나 다른 여자들을 찐따처럼 자존감없는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비틀거리며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사랑'.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회사에서 역으로 가는 도중에, 어떤 일을 깨달았다. 그 상태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나 자신도 솔직히 놀랐다. 평소 같으면 머릿속으로 '코메르시오 광장에서 3번 버스를 타고 산타아폴로니아 역으로.'라고 생각했을 텐데, 버스 안에서 내가 '물가 공원에서 3번 버스를 타고 하나쿠즈레 역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186~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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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할아버지가 없다.

내게 유전자를 물려준 생물학적 할아버지는 있겠지만

난 외/친할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완고하고 고집스런 할아버지가 손녀를 대할 때만은 달라지는 그 따스함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성장소설로 분류되는데, 여러 성장소설을 읽어도 내 삶을 성장시킬, 내 인생을 바꿀 만한 소설은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알고 싶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살아온 시간들을 기억하며 곧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도 알고 있는 한 인간이(누구의 무엇도 아닌, 그냥 그 사람 자체)

이제 막 꽃을 피우려고 하는 인생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를...

난 소설을 통해, 남의 인생을 통해 엿볼 수 밖에 없는, '리버보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축복을 감사하라.  무엇을 하여도 할아버지는 얻을 수 없으니까.

 

할아버지의 어린 모습이 내게 나타나 아직도 막막한 인생의 커튼을 열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리버보이를 찾기 위해 엄청난 거리의 바다를 헤엄쳐가는 아이처럼

나도 그 커튼, 그 자락을 잡아 들어올리기 위해 오늘도 헤엄친다.

나의 헤엄은 다소 서툴지만 언젠가는 한 폭의 아름다움 그림이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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