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삶의 태도
장하석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하는 마음, 서로를 지탱하는 신뢰

과학은 내겐 언제나 미지의 세계 같은 분야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자꾸 다가가고 싶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AI가 일상으로 들어오고 세계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현실이 피부에 와닿는 요즘, 과학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변화의 파도를 따라가기 위해 어쩌면 과학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호기심으로 장하석 교수의 책을 펼쳤다.

​

이 책은 중앙일보에서 2021년 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연재한 칼럼을 다시 가다듬어 엮은 것이다. 1장에서는 과학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2장에서는 그 마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3장에서는 인간 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을 풀어가는 데 과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여러 차례 마주하게 된 단어는 겸허함이었다.

저자는 보수와 진보를 겸비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적인 태도 역시 겸허함이라고 말한다.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지식과 관습을 주제넘게 배척해서도 안 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만에 빠져 새로운 것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태도가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19세기 말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발견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거대한 전환을 맞이했다. 기존의 지식은 새로운 발견 앞에서 수정되었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지식이 모두 무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한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식은 남아 있었다.

과학의 진보는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일만은 아니었다. 오래된 지식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살피고, 새로운 발견을 통해 기존의 생각을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결국 겸허함이란 자신이 아는 것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학은 무엇을 근거로 그토록 높은 권위를 갖게 되었을까?

저자는 과학의 강점이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는 특별한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는 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학자들이 기존의 판단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입장을 번복하는 일이 아니다. 주어진 근거 안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더 많은 지식과 높은 수준의 검증을 통해 그 판단을 교정하는 것이다.

과학의 세계에는 절대 틀리지 않는 사람도, 무조건 옳은 이론도 없다. 자신의 연구를 비판받을 수 있도록 열어두고,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면 개선하는 과정이 과학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겸허함이야말로 참된 권위의 바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에게 확고한 신념이 있다고 생각하고, 생각을 바꾸는 사람에게는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더 나은 근거를 만났을 때 생각을 수정하는 것은 무너지는 일이 아니라 성장하는 일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오히려 더 깊은 신뢰가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태도는 정직과 신뢰라는 가치로 이어진다.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수많은 사실을 믿으며 살아간다. 남극에 가보지 않았어도 남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수많은 과학적 발견을 직접 실험하지 않았어도 연구자들의 결과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의 지식과 경험에 기대어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자 사회가 서로의 관측과 실험 결과를 정직하게 공유하는 것을 전제로 성립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연구가 다른 사람의 검증 위에 놓이고, 그 결과가 다시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만약 과학자들이 자신의 결과를 왜곡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감춘다면 그 위에 쌓이는 지식 역시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율곡 이이가 학문은 깜깜한 방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 것처럼, 정직은 학문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과학자 사회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떠올렸다.

기차역이나 카페에서 핸드폰이나 캐리어를 놓아두고 잠시 자리를 비우는 모습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물건 하나를 두고 자리를 비울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 그것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자리를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물건과 자리를 존중하는 작은 약속이 작동한다. 누가 지켜보거나 특별히 규칙을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의 행동을 믿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편리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의료와 교육, 교통과 행정 등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분야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의사는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환자를 돌보고, 교사는 아이들의 배움을 책임지며, 기술자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책임을 진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해내리라는 믿음으로 각자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의 역할을 믿으며 자신의 하루를 이어간다.

사회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감시하고 확인해야만 유지되는 구조가 아니다. 각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역할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복잡한 사회 시스템도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누군가의 성실함이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지탱하고, 그렇게 이어진 믿음이 사회 전체를 떠받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에 정직하고 동료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일을 당연한 책임으로 여기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도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사람들의 전문성과 수고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신뢰는 한쪽의 믿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믿음에 부응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쌓일 때 비로소 사회의 문화가 된다.

한편 우리 사회가 가진 가능성은 과학을 향한 대중의 호기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국내에서 천만 관객에 가까운 사랑을 받았던 일이 떠오른다. 상대성이론과 시간의 지연, 블랙홀과 웜홀처럼 쉽지 않은 과학적 소재를 담은 영화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것이 곧 과학적 이해도가 높다는 증거는 아니겠지만, 낯선 과학의 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관련 지식을 찾아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과학이 전문가들만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AI가 수많은 정보를 만들어 내고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만큼 무엇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근거를 살피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두며, 더 나은 설명이 있다면 기꺼이 생각을 수정하는 일. 과학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이러한 태도는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과학은 완성된 진리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겸허함이 있고, 서로의 결과를 정직하게 나누는 신뢰가 있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비판과 개선이 있다.

과학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궁금해 책을 펼쳤지만, 책장을 덮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과학 지식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내가 아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지식과 경험을 존중하며,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온함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 내가 선 자리에서 나의 몫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오래된 약속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