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시 포도 분이 시작됐어요 김상현 교수의 처음 만나는 수학 동화 1
김정진 그림, 서지원 글, 김상현 기획 / 글고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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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와 포도 사이에 숨어 있는 숫자의 약속

숫자가 싫은 수아는 모든 수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

수아의 방에 걸린 시계 속에는 숫자 대신 수아가 좋아하는 딸기와 포도같은 과일이 들어 있다. 숫자 같은 것은 모두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수아의 바람은 어느 날 정말 현실이 된다.

“숫자 같은 거 다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어!”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아빠가 인형보다도 작아져 버린다.

아빠는 사실 수학의 약속을 지키는 수학 가디언이었다. 숫자를 되찾지 못하면 세상의 질서가 사라지고, 아빠 역시 사라질지도 모른다. 결국 숫자를 가장 싫어했던 수아가 세상과 아빠를 지키기 위해 숫자를 찾아 지하실로 달려간다.

숫자 냄새를 찾아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장면에서는 책장을 넘기는 손에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숫자에 냄새가 있다는 발상이 재미있으면서도 문득 오래전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매일 보던 책상을 꼭 ‘책상’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래서 사물의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이름을 바꾼 것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된다.

책상이라는 이름도, 숫자라는 기호도 처음부터 그 사물에 붙어 있던 운명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수학도 결국 약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나를 1이라고 부르고, 둘을 2라고 쓰고, 일정한 기호와 규칙에 따라 계산하는 것. 우리가 모두 같은 약속을 지키기 때문에 숫자는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수아가 숫자를 딸기와 포도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은 귀엽고 재미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수아처럼 숫자를 다르게 부르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이라는 숫자가 사람마다 다른 것을 의미한다면 시간도, 돈도, 길이도, 무게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숫자가 꼭 문제집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우리 아이에게 숫자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소리이며, 어떤 냄새일까?

딸기 세 개를 접시에 올려놓으며 숫자를 눈으로 보고, 포도알을 하나씩 세며 손끝으로 느낀다. 요리를 할 때는 계량컵의 눈금을 보고 밀가루의 무게를 재며, 완성된 음식의 냄새와 맛을 경험한다.

악기를 연주할 때는 박자를 듣고 몸으로 느낀다. 하나, 둘, 셋, 넷. 숫자는 소리가 되고 리듬이 되고 움직임이 된다.

시계를 보며 시간을 읽고, 달력에서 날짜를 확인하고, 용돈을 세고, 몇 번째인지 순서를 정하고, 운동을 하며 몇 바퀴를 돌았는지 세는 순간에도 숫자는 우리 곁에 있다.

그러고 보면 수학은 참 이상한 과목이다.

문제집에서는 차갑고 딱딱한 숫자로 만나지만, 일상에서는 딸기의 색과 맛으로, 포도의 촉감으로, 음식의 냄새로, 음악의 리듬으로, 시계의 움직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어쩌면 아이에게 수학이 어려운 이유는 숫자를 잘 몰라서가 아니라, 숫자가 살아 있는 일상과 문제집 속 숫자를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만나는 수학 동화 1』은 숫자를 싫어하는 수아에게 숫자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도, 수학을 억지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숫자가 사라진 세상을 보여주며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질서가 사실 수많은 약속 위에 세워져 있음을 재미있는 모험으로 풀어낸다.

「책상은 책상이다」에서 한 사람이 언어의 약속을 혼자 바꾸었을 때 세상과 소통할 수 없었던 것처럼, 수아가 숫자를 없애버리면 세상의 질서도 흔들린다.

결국 숫자는 세상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고, 수학은 그 약속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에게 “수학 공부해야지”라고 말하기 전에 오늘은 조금 다르게 숫자를 찾아보고 싶다.

냉장고 속 계란은 몇 개이고, 저녁을 만들기 위해 물은 몇 mL가 필요한지. 음악은 몇 박자로 흘러가는지. 시계의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그리고 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너에게 숫자는 어떤 냄새가 나?”

혹은 냄새만이 아니라,

어떤 색이고, 어떤 소리이고, 어떤 촉감이고, 어떤 맛일까?

숫자를 싫어하는 수아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니 숫자를 가르치는 방법보다 먼저, 아이가 숫자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수학은 어쩌면 숫자를 외우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세상 곳곳에서 숫자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수학을 어려워하거나 숫자를 낯설게 느끼는 저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수학을 문제 풀이와 계산으로만 접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숫자가 우리 생활 속 어디에 숨어 있는지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수학을 처음 접하는 아이와 함께 읽으며 “우리 주변에서 숫자를 찾아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모에게도 추천한다. 딸기와 포도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해 시계, 요리, 음악까지 자연스럽게 수학의 세계로 데려가는 책이라 수학을 공부하기 전에 수학을 친근하게 느끼게 해주고 싶은 아이에게 좋은 첫 수학동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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