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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기록법 - 평범한 생각을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으로 바꾸는 힘
조윤제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8월
평점 :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다산은 사랑받는다.
그의 저서와 독서법, 공부법에 관한 이야기들은 꾸준히 새롭게 편집되어 출간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다산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은, 그의 삶과 공부법 안에 시대를 뛰어넘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록법은 어떨까.
다산은 무엇을 어떻게 기록했기에 그렇게 많은 생각과 지식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람 공부를 통해 옛사람들의 삶에서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조윤제 작가의 신간 『다산의 기록법』을 읽으며 생각해보았다.
책의 부제는 ‘평범한 생각을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으로 바꾸는 힘’이다.
처음에는 기록을 잘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읽고 나니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기록의 기술이 아니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을 한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문장을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가 깨닫는 것도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오래 생각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은 생각은 대부분 사라진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다시 떠올리려 하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산은 그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가려 뽑는 초서,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관찰,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적는 차록, 그렇게 쌓인 기록을 분류하고 편집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생각을 지식으로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초서법이 인상 깊었다.
책 속에서 중요한 것을 가려 뽑아내는 초서법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교육이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중요한 문장을 찾을 수 있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자신의 기준과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이런 공부를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사실과 생각에 대한 구분을 배운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판단한 것을 사실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느낀 것을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기도 한다.
다산은 일어난 일은 일어난 대로, 자신의 해석은 해석대로 분리했다.
기록하기 전에 사실을 확인하고, 그 위에 자신의 생각을 쌓았다.
어쩌면 다산의 기록이 지금까지도 진정성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책에서도 다산의 기록 원칙 가운데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한다.
생각해보면 기록은 단순히 기억을 남기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볼 것인지 선택하고, 본 것을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다시 꺼내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연결하면서 처음에는 평범했던 생각을 조금씩 다른 차원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기록은 정보가 되고, 정보는 지식이 되고, 지식은 삶의 판단을 돕는 자산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평범한 생각을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으로 바꾸는 힘.
나 역시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면서 기록의 힘을 조금은 경험해왔다.
그때는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갔던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몇 달, 몇 년이 지나 다시 꺼내보면 그 안에서 아이의 변화가 보인다.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있고, 서툴렀던 행동이 자연스러워져 있고, 어느 순간 혼자 해내고 있는 일들이 늘어나 있다.
기억만으로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았다면 놓쳤을 변화들이다.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 수 있고, 그 차이를 통해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기록은 기억을 남기는 일을 넘어 성장을 읽어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최근 읽었던 백희성 작가의 『쓰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책 역시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기록해둔 생각들이 쌓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평범하게 떠오른 생각 하나를 적어두고, 그것을 다시 꺼내보고, 다른 생각과 연결하고, 다듬어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
기록은 과거를 보관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기록법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 역시 처음부터 거대한 지식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문장을 읽고, 한 가지를 관찰하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두고, 그것을 다시 분류하고 연결했을 것이다.
그렇게 평범해 보였던 생각들이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결국 수많은 저서가 되고, 세대를 넘어 남는 지식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만능 일꾼’처럼 보이는 다산의 힘도 어쩌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는 사람.
붙잡은 생각을 쌓아두기만 하지 않고 다시 꺼내어 연결하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을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사람.
나무를 가꾸듯 문장을 꺼내고 다듬으며 살아간 다산을 보며, 작가들의 글에서 수행자의 삶이 보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자신의 삶과 인격을 다듬지 않는 글은 아무리 문장이 화려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를 흔들어놓지 못한다.
결국 기록에는 사람이 담긴다.
무엇을 기록했는지를 보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고, 오랫동안 쌓인 기록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니 ‘기록을 잘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보다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남았다.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기록하는 습관.
흩어진 기록을 종류별로 묶고 다시 편집하는 습관.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어 읽어보는 습관.
아이들의 오늘을 기록해두었다가 훗날 그들의 성장을 읽어주고, 오늘의 내 생각을 기록해두었다가 미래의 내가 다시 읽으며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것.
그렇게 쌓인 기록들이 언젠가는 나만의 지식이 되고, 나만의 문장이 되고, 나와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자산이 될 것이다.
다산에게 기록은 단순히 기억을 위한 방법이 아니었다.
평범한 생각을 붙잡아 지식으로 만들고, 지식을 삶으로 연결하고, 그 삶을 다시 다음 세대에 남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산의 기록법』을 덮으며 나도 하나를 시작해보려 한다.
대단한 생각을 기다리지 않고, 오늘 떠오른 평범한 생각부터 기록하는 것.
어쩌면 지금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생각 하나가, 시간이 지나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이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