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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철학지식 -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김형철 지음 / 가나출판사 / 2025년 12월
평점 :

어린 시절, 사람은 신의 바둑판 위에 놓인 바둑알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신은 과연 존재하는지,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지 같은 질문들이 자주 떠오르곤 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했다는 편이 더 맞겠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존재론적인 질문들이 궁금했다면, 중·고등학교에 이르러서는 조별 과제 속 역할 갈등,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미묘한 고독, 하루를 돌아보는 밤에 몰려오는 수치심 같은 감정들이 마음을 차지했던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질문들에서 철학은 시작된다.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최소한의 철학 지식』은 이런 크고 작은 질문들 앞에서 과거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우리가 현실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자아가 형성되어 가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야말로 꼭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낯선 철학자들의 이름과 개념 앞에서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적 사고를 삶에 적용하는 강연을 해온 저자의 이력답게,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철학자의 말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게 된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하나의 즐거움이 곧바로 행복은 아니라는 말처럼, 작은 기쁨들이 차곡차곡 쌓여 삶이 만족스러워질 때 비로소 행복은 여름처럼 찾아온다는 저자의 해석에 예전에 들었던 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일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지금의 좋은 일에 집착하면 그것 또한 고통이 되고,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고통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누군가 이렇게 풀어서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꽤 오랜 시간 고통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 크기만 키우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군주 아래 있다.” ― 제러미 벤담
모든 행동과 선택이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이 말 속에서, 우리는 행복이 단순히 쾌락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과 고통이 우리를 고통 속에만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누구나 화를 낼 수 있고,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적정한 시간에, 적절한 사람에게,
적당한 정도로, 올바른 목적을 위해,
바른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아이에 대해 자동적인 판단을 하는 순간, 내 안에서는 화가 먼저 솟아오른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올해의 목표 하나를 꼽자면, 훈육의 목적을 분명히 세운 뒤 행동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침대 위, 거울 앞, 학교 안, 책상 앞, 카페 안, 버스 안 등 아이들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떠오를 법한 생각의 타래를 각 장의 주제로 삼아, 나와 타인, 일상과 미래, 관계와 세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철학자의 말과 엮어 풀어낸다.
‘나다움’에 대한 고민부터 타인의 시선, 연애와 규칙, 돈, 친구, 신에 이르기까지 성장 과정에서 한 번쯤은 품어볼 만한 이야기들이 고루 담겨 있다. 그중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마음에 오래 남는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