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무엇이든 그 일이 재밌어질 때까지의 지겨운 초보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적된 연습과 시간이 즐거움의 재미를 일깨운다.

읽는다는 것

단순히 눈운동으로써의 읽기가 아니라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파고들고, 

나의 생각과 연결 짓고, 

그것을 삶에서 활용하는 독서가로서의 읽기는 왠지 막막하기만 하다.



저자의 책 제목은 이런 나와 같은 초보 독서가에게 딱 맞는 단어라고 느껴졌다. 

작가인 시로군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세계문학 읽기 모임인 막막한 독서모임, 한책읽기의 기획과 진행을 맡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테의 수기를 인용하며, 가정교사의 책 읽는 모습을 관찰하고 묘사한 모습을 통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본다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책을 너무 엄숙하지 않게 다가가며 흥미로운 대목을 찾고 그 대목을 어떤 식으로 끌어가는지, 그저 아침에 15분 정도 목적 없이 뒤적여 보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나를 사로잡은 장면이 내게 필요한 장면이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 책 읽기의 재미라고 설명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우리는 책 속에서 나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길 원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원래 콘텐츠를 다른 사람이 편집하거나 시선이 가미된 영상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감상들은 같은 것을 보고서도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거나, 새롭거나, 공감하는 타인의 감상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이 책을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포인트들이 책 속에 가득했기 때문인듯하다.



모방으로 만들어진 삶의 태도는 나인가 모방일 뿐인가?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자연스레 배어 있으면 그것이 결국 내 것이 되는 것, 따라서 스스로에게 어떤 정체성을 부여하고 노력하며 따라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돈키호테를 빗대어 꺼낼 수 있다니! 



그저 머리에 볼트 달린 괴물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버려졌으나 배우고 소통하려 했던 피조물, 자발적 독서가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 이해를 ai가 이토록 진화한 지금, 다시 프랑켄슈타인을 만나 생각하게끔 만든다. 



참마죽을 갈망하던 오위를 통해 풍경이 내 것인 사람과 풍경처럼 존재하는 사람을 인식하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눈을 빌린 수식어로써 인물을 이해하게 하고, 그 인물을 관통하는 한 단어를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생각지 못했던 공간이 주는 의미, 번역가의 의도 등 저자가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가 읽기만 하던 초보자에게 글이 끌고 가는 속도와 느낌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와 같은 감독의 의도를 해석해 주는 프로그램과 같은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장의 제목에 집중해서 왜 이 소설을 여기에 배치해 두었나 하고 읽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 말처럼 대단한 독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책을 늘 펼치고 덮는 과정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 



세계문학의 문턱이 높거나, 

내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 

혹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거나,

작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독서모임을 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는 사람들,

그저 책이 좋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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