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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입양했습니다 - 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 탄생기
은서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불안이 많은 내가 모든 일은 어떤 방향으로든 잘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하게 된 데에는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4p
이제는 다른 이들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온전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고 싶었다. 방황하는 나를 먼저 이해하고 보듬고 채우고 나면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안에선 계속 충돌이 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자유롭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신경 쓰며 틀에 나를 다시 가두고 있었다.
외로운 상황에 나를 던져 고립되고 싶어 하면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어우러져 잘 살고 싶기도 한 나는 그저 모순 덩어리였다. 문득, 선각자들의 생각을 엿보다 보면 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좀 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1p
모든 게 피곤하게만 느껴졌던 그 상황들을 흔들림 없이 잘 물리칠 수 있었던 건, 그래도 그곳에서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이들의 보살핌으로 그곳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살 수 있었다. 내가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직장 동료들은 나의 제주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줬다. 그때는 몰랐다.
무뚝뚝해 보이기만 했던 그들이 내가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많이 신경 썼다는 것을. 바다가 섬을 안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날 감싸 안아줬다. 외로움 속에서 평화를 찾고 싶어 찾은 섬에서 나는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외롭지만 따뜻했다. 그런 배려가 쉽지 않은 일임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그때 그분들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더 적었을 때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32p
"원래 말이 별로 없어요?"
스님이 물었다. 그런 편이라고 대답했다.
"왜? 살면서 별로 궁금한 게 없어?"
스님은 다시 물었다. 이제껏 아무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던,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었다. 난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사람인데 왜 말이 없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의 궁금함은 주로 나를 향한 것이었으므로, 굳이 다른 사람에게 될 물어볼 필요가 없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38p
판타지 같았던 석 달간의 암자 생활은 살다가 지칠 때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나이도, 성격도 모두 다른 우리가 만나 즐겁게 살았던 경험은 '이런 형태의 가족을 구성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의지하면서 따뜻하게. 성별과 나이를 떠나 서로 깊은 신뢰를 바당으로 의지하고 살면 가족 아닐까? 50p
고통스러웠던 지난 경험은 비록 지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간 괜찮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지긋지긋했던 아토피가 나에게 준 깨달음이다. 58p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간혹 누군가는 내게 채식주의자냐고 되묻는다 그럴 때면 잠깐 멈칫하게 된다. '주의자'는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채식에는 확고한 신념도, 이를 널리 알리거나 상대를 바꾸려는 적극적인 설득 행위도 없다. 그저 내가 살기 위해 나에게 더 잘 맞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을 할 뿐이다. 60p
할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리던 어느 날이었다. 혼자 생각에 빠져있다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행복이 휠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요?"
그런데 할머니가 이렇게 답하는 것이 아닌가.
"지붕 있고 네모 반듯한 집에서 잘 먹고 잘 싸면 그게 잘 사는 거지, 행복이 별거 있나?"
한 방 크게 얻어맞은 듯했다. 놀라서 할머니를 쳐다보니 해맑게 웃으며 이쁜이 인형을 토닥이고 계셨다. 67p
그날 나는 처음으로 '왜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67p
시골이 고향도 아니고 시골살이는 해본 적도 없으나, 산이 좋고 숲이 좋은 나에게는 그곳에 사는 것이 당연한 미래였다. 73p
20대 초반부터 친구들에게 "난 언젠가 지리산에 살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막연히 지리산을 동경했기에 자연스
레 이주할 곳을 지리산 자락으로 정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 연고를 만들고 지역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곳에서 진행하는 귀농 교육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서울에서의 귀농 교육이 끝나는 날부터 지리산 자락의 귀농학교에서 시작하는 두 달 과정의 교육이 있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75p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보면 폐가를 사서 예쁘게 잘만 고쳐사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이상했다. 폐가를 보러 다니고, 건축상담을 받아보고야 알았다. 그 믿기지 않는 탈바꿈 뒤엔 엄청난 '개고생'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시간을 왕창 쏟아붓 든지 돈을 쏟아붓 든지 둘 중 하나다. 100p
기왕 시골에서 살면서 농사지을 생각도 갖고 있는 이상 농업인이 돼 가공, 유통까지도 다 도전해 보기로 했다.
정작 땅 주인은 팔 생각도 없는데 내 머릿속에선 어떻게 땅을 사고 어디에 건물을 올릴지 벌써 그림을 그렸다. 102p
그런데 놀랍게도 이 땅은 길지가 맞았나 보다. 지난해 마을 전체가 지적재조사 사업 지구로 선정되면서 내 땅 옆 현황도로를 국가가 수용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지적재조사 사업은 현실 경계와 지적공부상 경계가 불일치하는 토지를 최신 기술로 새로 측량하는 국책 사업이다. 일제강점기에 종이로 만든 지적도를 디지털 지적으로 구축해 토지의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해 2012년부터 2030년까지 시행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맹지에서 탈출하는 신묘한 땅이라니.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가만히 기다렸을 텐데.... 109p
풀이 있어야 땅심이 생기고 작물에도 좋다기에 풀에는 손대고 싶지 않았지만, 농작물보다 더 높이 자란 풀 때문에 작물이 자라질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아야 했다. 농작물이 어느 정도 자라고부터는 풀을 뽑지 않고 벤 뒤 거름처럼 놓아줬다. 농작물이 다치지 않게 풀을 베는 건 풀을 뽑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매일 쪼그려 앉아 풀과 싸움을 하고 나면 온몸이 아팠다. 처음 해보는 거니까 요령도 없고 당연히 아플 수밖에. 이것도 다 농부가 되기 위한 과정이려니 생각했다. 누군가 그랬다. 수행 방법 중 최고는 농선이라고. 농사를 짓는 행위 자체가 수행이다. 풀 뽑는 동안 잡념은 사라지고 생각은 그저 단순해진다. 그런데 도대체 풀을 얼마나 뽑아야 하는 거야? 114p
각자의 위치에서 요란하지 않게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는 것.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도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115p
수확하면서 콩 먼지를 뒤집어쓰니 그때야 콩 껍질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식당에서 껍질째 삶아져 나온 콩 반찬만 먹어봤지, 살면서 이제껏 껍질째 온전한 콩을 접해본 적이 있어야지. 117p
그들의 예상과 달리 나는 매일 바쁘다. 도시의 바쁨과는 다르지만, 시골에는 시골 나름의 바쁨이 있다. '바쁘다'보다는 '끊임없이 뭔가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도시의 시간과 시골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119p
귀농 귀촌 선배들이 공통으로 하는 조언이 있다. 최소 2년 이상은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시골살이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시골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준비 없이 이주하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결국 다시 도시로 나가게 될 거라고 했다. 요즘 세상엔 자연인도 돈이 있어야 한다. 121p
딱. 딱. 딱. 딱딱. 딱. 딱딱딱 딱딱. 잘 잤니? 집이 아침 인사를 건넨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이 집은 온도 변화에 민감해 기온이 높아지면 소리를 낸다. 청각이 예민해 거슬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소리를 아침 인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127p
그런데 청년귀촌캠프에 참여해보니 내 나이가 꽤 많은 편에 속했다. 그전에 귀농학교라는, 과거 귀농 : 귀촌의 정통코스(?)를 밟았을 때는 참가자의 평균 연령이 50~60대라 30대의 난 애송이였다. 반면, 캠프에서는 나보다도 휠씬 어린 나이에 시골살이를 시작한 친구들이 많았다.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귀농학교에서 동기들이 나를 바라볼 때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그래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귀농 . 귀촌인을 보다가 혼자 시골살이를 하려는 사람들과 있으니 나만 이방인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은 편했다. 귀농학교에선 '나 혼자여도 정말 괜찮을까?' 조금 걱정이 됐는데, 캠프에 참여해보니 '혼자인 사람들이 서로 연대한다면 얼마든지 괜찮을 수 있겠구나'싶었다. 141p
우리는 친한 사이지만 언니는 여전히 내게 존댓말을 한다. 언젠가 언니에게 이제 편하게 반말하라고 말했을 때 언니는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대답을 했다.
나는 사람들이 서란을 시골에서 혼자 사는 나이 어린 여자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니는 자신이 나에게 존댓말을 하면 그걸 보는 다른 사람도 나를 존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14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