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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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시민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

현대지성


그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본문 p.72]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만약 삶이 숭고한 것이라면 그것을 몸소 체험한 다음에 나의 다음번 여행때 그 고상함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를 써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p.121]

삶을 주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것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한다. 누군가가 걸었던, 소위 검증된 길을. 그렇게 우리는 평균치를 두텁게 하는데 생각을 보탠다. 숨기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선택과 실천은 용기있는 자들의 전유물 이었다.

월든에서의 사상은 자연에 기초한다. 자연에 근거를 둔다는 것은 화합과 조화를 기본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에 귀착하는것을 최선의 합리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실천한다. 스승의 땅을 조금 빌려 스스로 월든 숲속으로 들어가 2년여 생활을 하며 그 기간을 집필과 생각의 기저를 튼튼히 한다. 즉, 바램을 실천하고 실천을 통하여 사상의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이다.

먼저 그 용기에 큰 찬사와 함께 부러움이 인다.

세상엔 한편으론 하고싶어만 하는 사람들과, 하고싶은 것들을 해 나가는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크고작은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동기는 용기 일 것이고 또한 용기를 뒷받침하는 사고의 유연성 이었을 것이다.

환경은, 사상들은 세월의 변화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어떨때는 세월의 물리적 변화에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표면적 변화와 달라 한가지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기를 유발하는 용기 일 것이다. 총칼들고 전쟁터로 뛰어 나가는 용기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용기도 같은, 아니 어쩌면 조금 더 큰 용기일 수도 있다.

월든에서의 생활은 여러가지 측면에서의 사색과 반성을 허락한다. 사색이 사색을 유발시키고, 반성이 반성을 유발 시키는 경우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관계의 정립은 또 다른관계를 연쇄적으로 발생 시킨다. 그와 유대를 지니는 모든 관계의 상대편은 항상 우주였다. 그(나) 스스로가 우주의 아주 작은 미미한 조각에 불과 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나)와 우주와의 바람직한 관계가 성립된다. 월든숲은 작은 우주다.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수 많은 우주들 중 다소 자그마한 우주.

만일 종교가 인간의 작품이 아니고 신의 작품이라면, 신은 인간보다 손재주나 말재주가 훨씬 뒤떨어 지는 것일게다. 2000년전 열매따먹고 땅파먹고 살던 시기의 종말론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가 힘들다. 종교가 아니면,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이야 말로 우주라는 유일신의 독생자일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멸망 시키기도 또한 죽음에서 구하기도 할 것이다.

자연에 근거함은 우주를 근거함 이고, 우주를 근거함은 시효가 발생하지 않는다.





국가가 이성적 원칙으로 다스려 진다면, 가난과 비참함은 수치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성적 원칙에 따라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부와 명예가 수치의 대상이다.

[공자]

나는 남의 강요를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숨 쉬고 살고 싶다. 누가 더 강한지 어디 두고 보자. 다수에게는 무슨 힘이 있는가? 나보다 더 높은 법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나를 강요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만이 나에게 그들처럼 되라고 강요할 수 있다. 사람다운 사람이 다수 군중에게 이런저런 방식으로 살것을 강요당하는 경우는 들어본 바가 없다. 그런 식으로 강요당한다면 그게 무슨 삶이겠는가?

[본문 p.466]

시민 불복종을 읽은후 첫 느낌은, 자연주의이다 지독한 자연주의 이다 라는 느낌. 세상을 살아가는데 각기 저마다 나름의 몫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그 의식에 근거한 표현역시 차거나 넘치지 않는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제도라는 것이 굳이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인가? 질서란 것은 유기체처럼 살아서 조직과 사회를 감싸 안을 것이며 상호간의 이해와 사랑만이 넘쳐 흐를 것이다. 이것이 이상주의가 아닌가?

소로는 월든. 숲속의 생활에서 자연을 구성하는 각 개체들의 화합을 보았고 익혔으리라. 자연속에서 무슨 성문(成文)의 법률이 존재할 것이며, 제도와 규율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곳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고 각 개체들의 이해와 양보로 완성되는 곳이 아닌가? 이러한 성숙하고 완성도 높은 개체들의 '양심'은 1차원적인 '평균치'에 그 논거를 근거하는 인위적 '법률'과 '제도'와 대립하는 경우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각기, 개인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리라.

"가장 훌륭한 정치란 어떤 정치인지요?"

"가장 훌륭한 정치란, 누가 다스리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 정치이다."

贞观政要 中.


[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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