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스타북스


그는 그 꿈이 자신을 저버리고 어두운 벌판이 있는 밤하늘 아래 꿈틀거리고 있는 도시 저편의 망막한 어둠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을 알지 못했다.

[본문 p.307]

누구든 이 작품을 읽노라면 작품속의 몇 안되는 인물들 중에 나는 누구와 닮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을 것이다. 그만치 작품속의 인물들은 곡절많은 세상사의 각 구석구석을 묘사한 듯 빨주노초파남보가 아주 뚜렸한 무지개처럼 지구별에 기생하는 인간종의 심리를 프리즘하여 펼쳐 놓았다.

192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돈잔치에 여념이 없었다. 1차세계대전 초/중반까지 중립국을 자처하며 전쟁물자 장사로 돈을 주워담을 자루가 부족할 정도까지 채운후 막바지에 적당한 구실로 참전하여 전쟁을 마무리 짓고, 젊잖은 표정과 몇몇 조약들로. 그야말로 세계의 큰형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전쟁이 끝났다 함은, 표정관리하며 모아놓았던 돈들을 흥청망청 쓰는 때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돈이라는 욕망과, 사랑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진 욕망. 두 욕망이 또아리튼 실뱀뭉치 처럼 서로 섞였다 풀어졌다 하며 팽창한다. 풍선이 커질수록 어느한 곳의 두께는 얇아진다. 얇아지고 또 얇아진다.

멍청하고, 순진하고, 순수하고, 따위의 열성인자를 품은 곳은 내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터져 버리고 만다.

그는 분명히 두 개의 상태를 지나서 세 번째 상태로 접어들고 있음이 분명했다. 당황스러움과 어쩔 줄 모르는 환희를 거쳐, 이제 그는 데이지가 눈앞에 있는 현실로 존재한다는 놀라움에 빠져 있었다.

이제 그 반동으로, 그는 너무 감은 시계의 태엽이 풀어져 버린 듯했다.

[본문 p.154]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개츠비를 데이지앞에까지 이끌었으나, 그역시 겸손한 사랑을 익히지는 못했다.

사랑이라는 무한한 에너지를 지닌 꽃은, 평형성을 읽고 부당하게 다루면 그 에너지는 꽃의 모습을 버리고 칼날의 모습이 되어 모두를 다치게 할 것이다.

모두가 떠나고 난 '이스트 에그'. 추수를 끝낸 겨울 벌판에 버려진 벼 밑둥을 바라보는 듯한 서늘함만 남겼다.

[F.스콧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는 닉 캘러웨이가 되어 소설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의 눈에 비친 1920년대 미국은 호화파티가 끊일줄 모르는 웨스트 에그의 개츠비저택과도 같았을 것이다. 돈과 사랑이라는 두 대표적 욕망이 서로 또아리를 틀고 어찌할 줄 모르는 사회를 고발하고 싶었을지도. 4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가 독자들에게 바랬던 것을 꼽으라면 방금 책을 덮은 나는 무엇을 고민 할 것일까?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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