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카의 여행

해더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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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에게 전쟁의 이유란 없다. 그녀들에겐 전쟁의 승리도 패배도 해방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역겨운 입김을 뿜어대며 수시로 덤벼드는 섹스에 굶주리고 섹스로 보상을 찾고자 하는 숫컷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것이라곤 '생존'밖에 없었다.



전쟁이야기다. 전쟁하면 첫째, 무엇이 떠오르는가? 모르겠다.

모르겠다 라고 짐짓 외면할 도리밖에 없다. 왜냐면 나는 그래도 잃을것이 몇가지 밖에 없는 생리학적으로 '남자' 였으니까.

전쟁은 '여자'들에게 특히나 잔인하다. 인간본성의 민얼굴을 맨몸으로 대하여야만 하는 그녀들의 상처는 위로할도리도 치료할 도리도 없다. 그냥, 그냥 세월이 어서어서 흘러 모두의 기억속에서 잊혀지기만을 바랄뿐.

독서 내내 머리곁을 서성이며 떠나지 않았던 책 두권이 있었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작품 '25시' 그리고 러시아출신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작품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 두권의 작품을 얼기설기 엮어놓으면 실카의 여행으로 변신할듯 하다.

전쟁,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매서운 시절이었건만 전쟁이후에 다시 유린되는 그들, 그녀들의 '팔자'는 대체 누가 구해줄수 있고,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른지.

우리 모두가 가해자 이고, 또 우리 모두가 피해자 이다.

전쟁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진행형이고 어느 미래에 어느 누구에게라도 뚝 떨어질 수 있는 벼락같은 것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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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으니 연합군의 수용소로 가라하고. 수용소에서 수용소로 전전하는 팔자가 기구하고도 절묘하다. '25시'에서의 '요한 모릿츠' 에서 크게 기울어진 마음이 실카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린 모양이다.

전쟁을 탓해야 할른지 아니면 인간성의 참혹함을 탓해야 할른지.

전쟁에서 기적을 바랄수 없는것과는 다르게 인간으로부터는 언제나 기적이 존재한다. 신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기적을 일으킨다. 참혹한 본성의 반대편에는 아름다움을 향한 본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꽃밭에서 피어서 꽃인 것이 아니라 꽃이 피는곳이 꽃밭인 것이다.

막사는 점점 아늑해지고 있다. 첫날 바늘을 넘겨주지 않으려 했던 자수가 올가가 몇몇 수용자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친다. 시트 끝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예쁜 도일리가 막사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실카는 계속해서 버려진 붕대를 모아 끓는 물에 빤 다음 자수팀에게 가져다 주었다. 여자들이 머리에 두른는 머릿수건에도 가장자리를 따라 섬세한 자수가 놓이기 시작했다.

[p.137]

그 어떠한 고통보다도 인간의 본성은 우선한다.

죽을것 같은 수용소에서도 다름다움을 향한, 평화와 사랑 그리고 나눔을 향한 인간의 본성은 존재하고 또한 전쟁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꽃이 꽃밭에서 피어서 꽃인 것이 아니다. 꽃이 피는곳이 꽃밭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용소 안에서도 사랑은 핀다. 가슴설레고 얼굴 붉히고. 머리를 밀고, 동상에 걸려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흙묻은 손을 감추고,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본성을 상실하지 않은 인간이며, 인간 본성은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다. 비록 신일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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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눈물이 쓸모가 없었던 곳이 있었다.

눈물이 쓸모가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녀에게 선택이란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모든일이 그녀에게 일어났을 뿐.

갑자기 툭 던져지듯 주어진 자유. 낯설뿐이다 자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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