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필립 라쿠-라바르트/장-뤽 낭시
문학과지성사
I.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함께 철학을 가르쳤던 친구이자 학문적 동려(同侶)였던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장-귁 낭시는 공교롭게도 1940년 같은해 독일 강점하의 비시정부에서 태어난 동갑이다.
여러면에서 서로의 공간이 겹치기도 하고 이탈하기도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대화와 지성으로 의견을 나누며 겹쳐지는 공간을 구분하고자 노력해 본다. 본디 철학이라는것이 조각배 한척에 의지하여 사고(思考)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 아닌가.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이길이 옳은 길이다, 아닐세 저길이 옳을것이야..
이들 두 친구간의 편지는 20여년전 함께 연극과 오페라에 무척이나 빠져 있을때 나누었던 이야기에서 이어진다. 이어진다기 보다는 또다른 시작이라고 보는것이 맞을듯 하다
II.
이들 둘은 사유의 통로를 공간과 행위를 함의하는 '무대'로 설정한다. '무대'는 그들이 공동으로 지극한 관심을 보였던 분야인 바, 각각이 바라보는 '연극'의 내면적 속성과 공간을 초월코자 하는 외면적 속성을 또다른 무대 즉 그들간 토론의 테두리에 공존하는 의식의 경계에서 그들 각각이 또한 스스로가 무대에서의 행위자가 되어 갈등한다.
'무대'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의 철학적 개념쌍들이 '무대'의 행위적 대리라고 할수 있는 '연극'의 이중성과 그 연장들이 맏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먼저 무대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의 '舞臺化'하는 과정이 '舞臺'를 '存在'하게 하는데 과정에서의 능동성과 시간적 개념의 순차적 이동에 따라 그 '존재'의 표현적 형태 역시 각각 現傳, 現存, 再現, 顯示, 顯顯 등으로 변화또는 분화하며 각 분화의 변곡점에서 '무대'가 가지는 형상(存在)의 대표성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대화를 이어 나간다.
III.
그들의 '무대'에 대한 다섯편의 편지 이후 12년이 지났다. 그들의 '대화'는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학술 발표장에서 그들의 공동의 작업, '대화에 대한 대화'를 소개하면서 앞선 논쟁을 이어 나간다.
그들은 청중을 향하여 발표를 하는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상대역이 되어 한편의 연극을 공연하듯이.
그들은 각각 '연극'이 갖는 '再現'의 개념적 성격을 類似性에 근거한 미메시스와 대상과 표상과의 일치에 근거한 同一性이라는 상이함을 顯示시킴으로서 '무대'의 완성도에 접근한다. 그들이 또한 '무대'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서.
EPIL.
그날, 학술발표장에서의 토론이후 그들은 다시 '무대'를 '무대화'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2007년 形象을 조형적 허구이며 화석화된 신화라 하였던 라쿠-라바르트가 먼저 세상을 떳기 때문이다. 그는 類似性을 벗어버린 진정한 現前으로 새로이 존재하고 있으리라.
두 철학거장들의 사상적 現前化는 잘 만든 시계속의 무수한 톱니바퀴들이 한치의 오차없이 맞물려돌아가듯 깊고 아름다운 대화로 이어졌고, 독서기간 내내 나는 수많은 감탄과 존경을 머금을수 밖에 없었다. 언어와 사고들을 나날이 상실해가는 내게 참으로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그들을 접할 기회를 주신 문학과지성사 그리고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