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1984북스

 

    병원 치료가 있는 날이다. 날씨는 많이 풀렸고 공기는 적당히 탁한듯 하다.

    병원을 나서기전 책을 두권을 챙겼다. 가급적 가벼운 걸로... 치료받는 주제에 벽돌만한것을 펼쳐들 수는 없지 않는가?

 

    책을 펼쳐들고 몇장 넘기는 순간, 무언가 익숙하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 가졌던 감정이 시나브로 잊혀졌던 것이 다시 썰물처럼 다가오는 느낌이 익숙하다.

    1990년대 중반즈음 이었으리라 기억한다. 형사출신 작가 김정현의 작품 '아버지' 읽었다. 결국 아버지와 아버지만 같은것은 아니었다. 단지, 세상의 아버지는 아버지 였던것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시골마을에서 2차대전을 겪은 평균치의 무식과 평균치의 순수함을 지녔던 평균치의 삶을 마무리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다.

 

    일요일, 돌아가는 기차에서 아이가 얌전히 있도록 놀아주려 애를 썼다. 일등석의 승객들은 시끄러운 것과 아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불현듯 <나는 이제 정말 부르주아구나>라는 생각과 <너무 늦었다>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나중에 발령을 기다리며 여름을 보내면서 < 모든것을 설며해야만 한다> 생각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사이에 찾아온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나는 곧바로 그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간쯤에 이르자 거부감이 찾아왔다.

    [p.19-20]

 

    그녀는 아버지를 남기고 싶었다.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와의 關係가 담긴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녀의 주제는 '자리(place)'였다. 공간에 대한 두가지 정의. 점유와 거리.

    그녀의 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사이에 존재했던 또다른 '자리' , 거리.

    덤덤하게 아주 덤덤하게 그녀의 아버지를 그녀만의 자리에 앉혔다. 그녀의 아버지는 세상을 등진후에 자신의 자리를 찾은 셈이다. 우리모두 역시 그러할 듯이.

 

    프랑스의 문학상중 가장 권위있는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콩쿠르상이 있고 신인작가중에서 선발하는 페미나상, 콩쿠르수상에서 제외된 작품 중에서 기자들이 선정하느 르노도상, 그리고 역시 콩쿠르수상에서 제외된 작품중 저널리스트소설, 기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엥테랄리에상이 있다.

    르노도상 수상작이다. 프랑스에서는 글을 어렵게만 쓴다고 인정해 주는것이 아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처럼 배배꼬아놓은 작품도 있는가 하면 에밀 아자르의 자기앞의 처럼 성장소설에 가까운 작품도 있다. 문학성이다. 문학성에 작가의 흔들리지 않는 호흡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아주 잘내려진 커피한잔을 마신후, 입가에 서성이는 殘香의 未練.

    한동안 그녀를 잊지 못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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