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크스페이스/미래도시/解題
렘 콜하스/프레드릭 제임슨/임경규
문학과 지성사
- 정크스페이스
정크스페이스는 지구에 남겨둔 인류의 찌꺼기다. 근대화가 건설한 생산물은 근대 건축이 아니라 정크스페이스다.
[p.9]
저자는 정크(쓰레기)와 건설(생산)과 같이 이중성/양면성의 공존을 전제로 현대와 POST-현대의 구조적 취약성을 서술하며, 반복적 정-반-합을 제시함으로 존재하지 않을것만 같은 미래로의 변증법적 접근을 시도한다.
정크스페이스라는 개념적 공간은 그의 始와終을 상호 극도의 반발력을 지닌 반목을 전제로하는 공존이며, 존재의 소멸을 조건으로 생산되는 무수한 순환고리인 것이다.
Real time 개념의 도입이후? 변화는 개선이라는 개념과 이혼했다. 진보란 없다. LSD에 취한 게처럼 문화는 뒤뚱거리며 옆걸음질 한다.
[p.19]
때로는 단 한 명만 비순응적인 태도를 취해도 정크스페이스 전체가 흔들린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단 한 명의 시민이 정크스페이스 전체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p.23]
현대라는 개념을 스포일하는 대부분이 공리주의로의 비굴한 선택이었다고 보는 저자는 사회적으로 공리주의를 存在와 不在의 야합으로 규정하여 우리가 역사속에서 공리주의적 선택을 통하여 인간적인, 선험적인, 절대적인 등의 가치들을 비인간적, 후험적 그리고 상대적인 등의 반대개념과 공존하는 일종의 의식적 기형을 탄생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정크스페이스는 스스로보다 조금더 작은규모와 작은개념의 정크스페이스들의 합이다. 그것은 또 그의 미세한 정크스페이스들의 합이고, 또,, 정크스페이스들의 조합이다.
극도의 복합적 성격을 기본으로하는 정크스페이스는 존치과정에서 역시 극도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가진다. 수많은 조건들의 아슬아슬한 조합으로 겨우 유지되는 균형이 사소한 불기대치의 작은 반응에도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릴 것이다. 마치 끊임없이 서로 꼬리를 물고, 또 그의 꼬리를 허락하는 장기판의 공-수-공-수-공...수… 로 이어진 상상적 균형이 어느 한순간 작은 묘수 하나로 힘없이, 허무하고 또 대단히 무력하게 무너져 내려버리듯이.
Fatally halt!!
그러나 형식없음도 여전히 형식이며, 형식이 없는 것 또한 하나의 유형이다
[p.21]
하지만 개념이라는것도 일종의 유기혼합물로 보아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발전이라고 이르고 발전이란는것은 과거의 것을 포기함으로서 정당화 되는 것이다.
인류의 조상, 그 조상의 조상의 조상때부터 양극화는 존재해 왔다. 세상은 평평한 평면이 아니다. 우리조상의, 우리의 그리고 우리후손들의 우주는 변증법 하나의 방법으로는 풀수없는 수수께끼 덩어리 이기 때문이다. 양극과 반발은 반성과 개선의 대상이지 부정의 대상은 아닌것이다.
도시의 불확실성이 가증되면 될수록 정크스페이스는 그만큼 더 구체성을 획득한다.
그를 막바지까지 해부 또는 확대하면 무엇이 보여야 하는가?
시각의 출발점인 나의 '눈(眼)'이 보일것이다.
- 미래도시
단언컨대 전통적인 혹은 우리가 모더니즘적이라 부를수 있는 도시계획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p.59]
우리가 딛고있는 시간을 '現在'라고 한다면 우리의 구상은 모더니즘을 고려 해서는 안될것이다. 現在란 이미 反省의 대상이지 計劃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항상 염두하여야 할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일 것이다. 아마도 서두르지 않으면 POST-모더니즘도 어느사이엔가 PAST-모더니즘이라는 황당하고 어리둥절한 위치에 존재할지도.
도시라는 무기집합체(無氣集合體)는 쇼핑이라는 호흡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다. 도시를 형성하는 모든 크고작은 요소(element)들이 끊임없는 분열과 소멸을 하며 성장고점을 향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것은 이 '쇼핑 안내서'가 건축과 도시연구 영역 말고도 다양한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과 지리학, 역사학과 경영학, 경제학과 공학, 생물학, 생태학, 여성학, 지역학, 이데올로기 분석, 고전 연구, 법률적 판결, 위기 이론 등과 같은 분과학문들이 이에 포함될 수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존재 법칙은 비차별화이며, 또한 그러한 시대에 우리의 관심은 어떤 방식으로 사물들이 서로 겹쳐지며 또 어떻게 분과학문의 경계가 무너지고 상호침투하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64]
콜하스가 의미한 것(정크스페이스)은 바로 영구 혁신이었다. 옛것을 부수고 동시에 그것을 끝없이 재활용한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계속적인- 변화이며, 이는 아주 드문 경우에 '복원'을 동반한다.
[p.82]
아나로그적 분석으로는 종국(終局), 애매모호한 강아지 풀뜯어먹는 소리에만 머물수가 있다. 애매한 경계속의 여전히 형이상학 논리라는 미지근한 욕탕안에서 돌돌 밀리는 때를 벗기고만 있을지 모른다.
도시는 오래전부터 이미 디지털적 요소로 설계되었고 건설되었다. 디지털적 시각으로 이해하고 분석해야한다. 0과1의 무한한 반복과 수열 그리고 집합에 펄스를 부과함으로서 생명력을 얻는것이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MODEN을 버리고 눈깜빡하면 '現在'가 되어버릴 POST-MODEN을 우리는 아나로그적 감성을 지닌 디지털적 이성으로 바라보아야 할것이다. 과거가 없는 오늘은 존재하지 않고, 오늘이 없는 미래 역시 다가오지 않을테니깐.
누군가 한때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것 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쉽다. 이제 우리는 이 말을 수정하여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상상하자.
[p.86]
나는 저자에게 다시 권한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함으로서는 부족할것이라고. 세계는 이미 끊임없는 종말과 재탄생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경계는 완벽히 중첩되어 있으므로 그 연결의 흐름(flow)를 각각의 프레임으로 분리하여 고찰하자고.
누구나 눈내리는 들판, 혹은 철새때가 날아드는 광경에 감동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감동을 프레임에 담고자 수없이 셔터를 눌러본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할 뿐일 것이다.
셔터를 눌렀던 순간의 감동은 어디론가 가고 없고 지저분한 풍경사진 몇장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보았으며, 무엇으로 감동하였던가?
오해와, 무지 그리고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해상도를 높이고 프레임수를 더하고, 펄스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선 한컷 한컷씩 끊어서 순간 순간을 관찰하여야 할것이다. 매 순간의 경계는 상호 중첩되어 있을것이며 각각은 독립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볼수있다.
또한 집합적 대단위의 큰 숨소리도 들을수 있을 것이다.
- 解題
정크스페이스(렘 콜하스著)와 미래도시(프레드릭 제임슨著)에대한
역자 임경규의 짧은 解題이다.
렘 콜하스
21세기 도시 공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인가? 이 정치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에 대해 네델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는 간명하게 답변한다. 쇼핑이다. 그는 주장한다.
"쇼핑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공적 활동의 마지막 형식이다."
이는 쇼핑이 21세기의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고 우리의 삶을 조직화하는 궁극의 원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p.97]
상대개념에 대한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관조. 미시적 접근에만
매달리다 보면 자칫 실체를 놓치는 오류를 범할수가 있다.
사회의 구성, 즉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전체사회구조를
반영한다. 하지만 그를 代表한다고 하지는 못할것이다. 좁은통로는 깊게 들어갈수록 夾角의 시야를 갖는다.
21세기 도시 공간속에서 우리는 소핑도하며 살아가게 될것이고, 소핑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공적활동의 일부분일수 있다는데에는 동의한다.
프레드릭 제임슨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인 프레드릭 제임슨,
그의 논문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 논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사성의 퇴조와 모더니즘적 시간성의 붕괴, 그리고 이에 따른 새로운 정서 구조와 공간 논리의
탄생'으로 볼수 있다.
[p.105]
이를 투박하게 정리해보면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의
하이퍼스페이스는 개인이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자신의 주변 환경을 지각하고 조직화 하며, 외부 세계와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적으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을 초월했다.
둘째,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은 결국 전 지구적으로 펼쳐진 후기 자본주의의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파악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제임슨의
이론적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두 개의 용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식적 지도 그리기'와 '유토피아'다.
[p.106-107]
하이퍼스페이스(초공간-hyperspace)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개념적 공간이며 개념에 대하여 한계를 설정한다는것 자체가 불합리적이다. 개념적 공간에 물리적주체를 위치 시키면 그자체가 어불성설이며
강아지 풀뜯어먹는 소리가 될수밖에 없다.
Hyper-space vs. Current-space vs.
Hypo-space로 구분할 수 있다면 그 구분까지는 받아들이나 그 각각의 개념적 공간에 해당하는 소개념들을 여기저기로 끌고다녀 혼란을
야기함에는 절대 동의할수 없다.
역자의 마지막 한마디가 정겹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에 유토피아지 않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