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우~"라는 긴 한숨과 함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나는 또 어쩔수 없이 나의 한계를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큰 作品앞에서는, 高手앞에서 자동으로 꼬리를 내리는 천성의 비굴함과 함께 아직도 내게 아름다운 글을 읽고 분별할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다는 쥐꼬랑지 만한 선민의식이 서로 질서없이 섞여있는듯한 혼란스러움.

고수(高手)들의 문체에는 특별히 드러나는 것이 있다. 바로 드러냄을 자제하는 조화로운 절제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절대 흥분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으며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는다. 그럼으로서 그들의 글은 '촌스러움'들과 구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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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도시 '파리'.

파리에서 죽음을 몰고다니던 나치들이 물러났다. 1944년 '파리해방'이후 파리는 조금씩 생명을 회복하기 시작하고,

回生이라고 일컷는 죽지않은 것들의 삶으로의 복귀.

파리해방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폴의 집에 모두가 모였다.

앙리, 뒤브뢰유가족들, 뱅상, 랑베르, 세즈나크, 샹셀, 그리고 <레스푸아>의 편집진들.

전쟁의 종말, 그것은 또다른 혼란을 의미한다. 어쩌면 더 큰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는 時代일지도 모른다.

2차대전의 종말, 그것도 자력이 아닌 힘을빌어 이룩한 해방이란 것은 해방을 맞이하는 딱 그순간부터 이미 그 해방군이 협력자와 동지가 아닌 점령자로 변신한다는것을 우리도 한세기 남짓한 길지않았던 세월동안 차고 넘치도록 배웠다.

작품은 1인칭(안)의 시각과 3인칭(앙리)의 시각을 오간다. 안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주관적이고 앙리의 시작은 대체로 객관적이다. 안과 앙느, 1인칭과 3인칭, 주관적과 객관적 대립의 시기를 대립의 관점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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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회복기의 지식층들은 알량한 꼬랑지 만한 사회적 고민들과 책임감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래도 그나마도 품지못한 짐승만도 못한 人心들이 판을치는 혼란스런 세상에서.

뒤브뢰유는 마음이 급해져 있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창당을 준비하고 있으며, 앙리가 합류하기를 바랬다. 뒤브뢰유는 앙리의 <레스푸아>가 필요하였다. 그가 이끄는 좌파사회단체 S.R.L의 기관지로서.

뒤브뢰유의 앙리에 대한 신뢰와 앙리의 뒤브뢰유에 대한 신뢰는 양쪽 모두 굳건했다. 하지만, 앙리는 쫒기는 마음으로 결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는 글을쓰고싶고 사유를 하고싶은 것이지 사회를 변화시켜야겠다는 혁명적 사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그 맥은 어느정도 일치하였지만.

무엇보다 그는 <레스푸아>를 포기할수가 없었으며, <레스푸아>에게 있을수 있는 그 어떤 변화도 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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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루이스를 만나러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는 결국 야구모자를 쓴 루이스를 만나서 함께 멕시코여행을 떠난다.

시카고로부터 멕시코 남부 유카타반도의 '치첸이트사'까지, 과테말라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그리고 다시 시카고로.

"우리는 어디 있는 거죠?" 나는 물었다.

"나도 그게 궁금해요."

[p.272]

안이 느끼게 되는 '사랑'이라는것의 본질은 본질이라는 존재성을 인정한 본질에 의한 감정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사막의 신기루 같은 의식의 굴절인가?

비누거품, 혹은 무지개 따위도 본질에 대한 고찰이 가능할까? 本과 質, 적어도 둘중 하나는 실존하는 남은 한쪽의 결핍일까?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당이 찌그러진 감정에 의하여 충분히 과장되고 증폭된 마음이라는 굴절된 수정체를 통해 망막에 맺힌 신.기.루 인가?

"그래요, 안 될 것도 없죠. 몇 년 후라면…."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였다. 몇 년이라는 시간. 영원의 맹세를 하기에는 난 너무 멀리 살고, 너무 나이가 많았다. 그러니 우리의 사랑은 조용히 사라질 정도로만 지속되어야 했다. 티 하나 없는 추억과 끝없는 우정을 마음에 남긴 채.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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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년간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 혼자였다. 각자의 육체에 갇혀서, 거칠어지는 피부 속에서 굳어가는 동맥과 함께, 쇠퇴하는 간과 신장, 희미해지는 피와 함께, 그 안에서 은밀하게 익어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죽음과 함께.

[p.585]

그것으로 충분해! 추억 하나하나가 너무나 심한 고통을 안긴다. 나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죽은 이들을 지니고 있는걸까!

[p.588]

무언가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뛰어야 해. 나는 귀머거리가 아니니 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될 거야. 누가 알겠어? 언젠가는 내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지. 정말 누가 알겠어?

[p.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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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다시 '사랑하고 싶어지는 이'가 생긴다면 절대 '이 책'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꽁꽁 숨겨두고 그녀를 감당하기 힘들 질때마다 혼자서 살짝살짝 훔쳐볼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조금 더 깊이 관조하고, 더욱 아름다워지고, 더욱 현명해지면 안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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