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결
전쟁은 1917년 독일-러시아간 먼저 강화가 이루어 졌고, 이후 1918년11월 독일과 연합국과의 휴전협정, 이듬해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독일과 31개 연합국들 사이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된다.
이 조약으로 독일은 해외식민지를 잃고, 알자스 로렌을 프랑스에 반환하였으며, 유럽 영토를 삭감당하였다(면적에 있어서 13%, 인구에 있어서 10%). 그리고 단찌히는 자유시가 된다. 또한 전쟁도발의 책임을 물어 전쟁 배상금으로 총액 200억 마르크 (약 330억 달러)을 부과하였다.
또다른 불씨
전쟁은 천만의 장병사망자와 이천만의 민간인 사망자를 낳았다. 군인과 민간인 합하여 삼천만 사망이라는 유례없는 인명을 제물로 삼았다.
전후처리 과정에서 국제연맹이 탄생 하였으며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터키제국, 독일제국의 영토 혹은 그 지배하에 있던 나라들이 모두 연합국 관리 또는 독립(실질적 연합국 관리)로 들어갔으며 준비되지 않은 변화는 이후 커다란 혼란과 분쟁의 불씨를 키울수 밖에 없었다.
한편, 연합국의 식민지들은 모두 그대로 남게 되었다. 연합국들은 크든 작든간 대부분 그들의 공로를 인정 받았던 것이다. 그로인해 대전이후 세계 식민지 지도는 연합국쪽으로 심하게 쏠리게 되었다.
강화조건에따라 과거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결과로 독일에 병합되었던 독일의 '알자스 로렌'지역이 프랑스에 반환 되었고, 루르-자르지역에서 생산하는 철광석을 15년동안 프랑스로 공급하는 등, 독일은 천문학적 전쟁배상금에 휘청이며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지경이 되었다.
한편, 동맹국측에서 연합국측으로 갈아탔던 이탈리아는 60만의 희생이라는 적지않은 피해를 보았음에도 별 보상을 받지못하였고 이후 전쟁후유증으로 나라 경제가 파산직전까지 가게 된다. 이탈리아와 독일, 이 두국가는 국가의 어려움을 민족주의에 기본을둔 각각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정치적 해법으로 돌파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된다.
대전중반이후 참전한 미국의 대통령 윌슨이 의회에서 발효했던 윌슨의 14개조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민족 자결주의'가 새로운 이념으로 대두 되었으며, 이는 많은 제3세계(한국 포함)들에게 독립의 꿈을 품고 그 의지를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대전이후 미국은 명실공히 경제와 군사, 양면에서 대국으로 급부상, 그 영향력을 공고히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