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웨일북/252p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가 선곳이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다. 축제나 축하할 일이 있는 행사때 흔히 보는 광경이다. 잔을 높이 쌓는다. 피라미드 처럼. 꼭대기에는 딱 한 개의 잔이 있고 그 밑으로 3의 승수, 제곱만큼의 넓이를 가진다. 모든 사회의 관계성은 이와 같다. 무수히 존재하는 '나'를 중심으로 관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잔에 술을 따라보자. 맨 윗잔에 술병의 술을 따르면 맨 위의 첫잔을 채운후에야 술은 다음층으로 흘러내린다. 마찬가지고, 두번째층을 채운다음에 그 다음층, 또 그 다음층으로.

40가지의 자전적 에피소드를 통하여 인간사회에서의 관계라는 의미를 정립해 본다.

저자는 타인, 세계, 도구, 의미 네 단계를 통하여 본질찾기에 접근해 간다.

'나'와 '자신' 그리고 '너'와 '너 자신' 모두가 독립된 '나'인 것이며, 이들에게는 역시 '각자' 나만의 세계가 있다.

아무리 마음이 통한다는 관계일지라도 그 마음과 마음이 어떠한 물리적인 도구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는다. 텔레파시라는 것 역시 의지의 적극적인 표현일 뿐 아무리 간단한 실적적인 반응도 얻어낼 수 없다. 다만, 언어라는 통로를 이용하여 머리나 마음속에 있는 '뜻'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언어라는것이 가진 커다란 단점은 출구와 입구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나왔던 모습그대로 들어가 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질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정교하고 성실하게 손질되었을 때는 그 가치의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물고기 안에서 눈떴던 존재는 물고기 안에서 눈감을 것이고, 풀벌레 안에서 눈떴던 존재는 풀벌레 안에서 눈감을 것이다. 짐승 안에서 눈떴던 존재도, 조류 안에서 눈떴던 존재도

[p.95]

각자는 각자의 세계에서 생겨나 각자의 세계로 소멸한다. 그 발생과 소멸사이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삼라만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발생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소멸후에는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삼라만상은 나의 존재와 더불어 생존할 뿐이다.

그러한 법칙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집착이다.

놓지 못하고 내리지 못하는 '집착'이다. 나의 존재가 단 '일회'뿐일 것이라는 두려움과 어리석음에서 오는 집착이다.

만다라가 인생에 대한 상징이었음을, 나의 모든 노력과 정성은 집착이 되어 모래처럼 쌓여가고, 우리는 이것을 붙들고 싶지만 결국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나마 한 줌이라도 움켜쥐고 싶지만 그것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다.

[p.117]

그렇다, 한껏 쌓았다가 무너지는것, 엄밀히 일컷자면 '공(空)'을 깨닫는 것이다.

充과 空은 통하는 것이다.

'나'를 비워 '너'를 채우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세계'는 비워짐과 동시에 너의 '세계'로 채워지고 그렇게 世界는 不滅인 것이다.

여행자. 그래서 이것이 모든 나라는 존재의 숙명인 것이다. 여기에 이유나 목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상상 할 수도 없이 지루하고도 긴 무한이라는 시간 동안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눈뜨고 휘둘리며 여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p.250]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이 세계의 전부라 생각하고 특히 자기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제 세계의 보편적 기준일 것이라고 믿지만, 세계는 그렇게 보편과 특수로 나눌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모든 보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가치의 부족함이 없다.

내 앞에 펼쳐진 빛으로서의 세계가 곧 나 자신이라는 진실,

이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서구철학은 이를 '현상'이라 부르고,

고대 인도에서는 이를 '마야'라고 부르며, 불교에서는 이를 '색'이라고 말한다.

[본문 -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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